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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10/21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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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당신이 응답해 주시니, 제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귀 기울여 제 말씀 들어 주소서. 주님,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가 언제나 성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정성껏 섬기게 하소서.

2024년 10월 21일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10월 21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10월 2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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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에페 2,1-10
오늘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도 전에는 잘못과 죄를 저질러 죽었던 사람입니다. 


그 안에서 여러분은 한때 이 세상의 풍조에 따라, 공중을 다스리는 지배자, 곧 지금도 순종하지 않는 자들 안에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우리도 다 한때 그들 가운데에서 우리 육의 욕망에 이끌려 살면서, 육과 감각이 원하는 것을 따랐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본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 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호의로, 당신의 은총이 얼마나 엄청나게 풍성한지를 앞으로 올 모든 시대에 보여 주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10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선행을 하며 살아가도록 그 선행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루카 12,13-21
오늘 복음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그때에 

13 
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15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10월 21일
신주환 안셀모 신부

 

✚ 미사시작 00:23

✚ 강론시작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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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오늘 복음에서는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루카 12,21)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 이어지는 루카 복음서 12장의 본문에서 이를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의 부자는 곳간을 크게 짓고 재산을 쌓아 두면 안전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죽음은 언제 다가올지 알 수 없고, 쌓아 둔 재물은 그를 죽음에서 구하여 주지 못합니다. 죽음을 걱정하거나 스스로 노력한다고 해서 죽음을 미루고 자기 수명을 늘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12,25 참조). 

복음을 약간 뒤집어서 읽는다면, 오늘 들에 서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풀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죽습니다. 그러니 수명을 늘리려고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의 나라”를 찾아야 합니다(12,31 참조).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은 아버지께서 알고 계시고 아버지께서 돌보십니다. 오늘 밤 죽어서 이 세상을 떠나게 되더라도, 그것이 하느님께서 모르시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다만 그분의 나라를 찾을 따름입니다.

그러면 재물은 어떻게 할까요? 같은 장에서,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푸는 것이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12,33 참조). 곳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자선으로 베푸는 것이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이고, 그렇게 쌓아 둔 재물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12,34). 

자선을 베풀어 하늘에 보물을 쌓을 수 있는 사람은 마음이 이미 하늘에 있습니다. 그는 지금 죽어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하느님의 작품인것 맞나?

“우리도 다 한때 육의 욕망에 이끌려 살면서 육과 감각이 원하는 것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의 말씀 가운데서 유독 ‘한때’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때 육의 욕망에 이끌리고 육과 감각이 원하는 것을 따른 우리라고 합니다. ‘한때’라는 말은 과거를 지칭하는 말이고 그 후에 달라졌을 경우 쓰이는 말이지요. 

예를 들어 ‘한때 우리는 잘 지냈다.’라고 하면 지금은 안 그렇다는 말입니다. 반대로 ‘한때 우리는 원수지간이었다.’라고 하면 지금은 사이가 좋은 거지요. 아무튼 ‘한때’라는 말은 인생 반전을 뜻하는 말인데 오늘 저는 어떤 반전을 살아야 하는지 보려 합니다. 

물론 우리가 살아야 할 반전은 은총을 받는 반전이고, 저는 진정 은총을 받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한때 저는 일부러 죄에 빠져 살려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20세를 전후해서 악마적인 꼬드김이 있었습니다. 

아오스딩 성인처럼 한때 방황과 방탕한 삶의 그 쓰라림을 겪어야지 하느님께 대한 갈망이 생기며 반전이 일어날 거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옛날에 예비고사를 보러 갈 때 부러 술을 마시고 갔고, 그래서 시험에 부러 떨어졌으며 죄의 구렁텅이에 빠져 살고 싶었고, 그렇게 신물이 날 정도로 죄의 어둠에 있다 보면 빛을 찾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용기가 없어서 실제로 그러지는 못했지만 한때 그리고 한동안 저는 죄가 많은 곳에 은총도 풍성했다는 바오로의 말씀을 잘못 신봉하며 일탈하고 싶어 했고 은총을 받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옛날의 제가 잘못 이해한 것이긴 해도 은총을 받고 싶어 했던 것은 잘못이 아니기에 그렇게라도 은총을 받고 싶어 했던 그때가 아름답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는 현재의 저에 대한 반성입니다. 현재 저는 은총을 받고 싶은 갈망이 그때만큼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가 이미 은총 가운데 살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 은총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은 현재의 은총에 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은총에 안주한다는 것은 현재의 은총에 만족하며 더 큰 은총 또는 더 많은 은총에 더 나아가려고 하지 않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죄를 뭉개고 있으면서도 은총에 안주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를 털고 일어나서 은총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런 죄인인데도 나를 사랑하실 것이라는 그 하느님 은총만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의 사랑에 기대어 일도 안 하고 마냥 방탕하게 사는 것만 같지요.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바오로의 말씀을 가지고 반성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라고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데 우리는 은총으로 구원받고 있습니까? 은총으로 구원을 향해 한걸음 또 한걸음 나아 가느냐 말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은 하느님의 작품입니다.”라고 또 말하는데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인 것이 맞습니까? 훼손된 작품은 아닙니까? 하느님 은총 중에 있는 것 맞나? 하느님 작품인 것 맞나? 이런 반성을 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성원과 참여 덕분에 비가 엄청 쏟아지는 가운데에서도 바자회가 잘 끝났습니다. 여러분을 통한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하며 하느님과 여러분께서 원하시는 대로 수익 금을 잘 쓰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쓰였는지 나중에 보고 드리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하느님께 소유당한 사람은 하느님을 소유하게 된다.

오늘 <복음>에서, 군중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말하였습니다.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주라고 일러 주십시오.”(루카 12,1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루카 12,14)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주 그러합니다. 형제들 사이에 시시비비를 가려 달라 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중재해주기를 청합니다. 그러면서 사실은 자신의 옳음을 밝혀 주며, 자신을 지지해주고 상대의 부당함이 들추어지기를 도모하기 일수 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다면, 시시비비를 가려달라고 하거나 중재를 청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맡기고 의탁하며,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우리가 응답하게 도와달라고 간청 드려야 할 일입니다. 

또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사랑할 수 있도록 자비와 용서를 청해야 할 일입니다. 

사실, 이 아우는 겉으로는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면서 재판과 중재를 요청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편이 되어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며, 예수님을 이용하여 자신의 탐욕을 채우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탐욕이 아닌 사랑에 가득 찬 아우였다면,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주라고 일러 주십시오.”라고 말하지 않고, “스승님, 제 형더러 저의 유산을 가지라고 일러 주십시오.” 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결국, 그는 재물에 대한 탐욕에 걸려 있고, 탐욕을 채우고자 하는 ‘자기 자신’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있지 않다.”(루카 12,15)

그렇습니다. 사람이 재물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재물이 사람에게 걸려 있듯, 사람의 생명 또한 자신에게 걸려 있지 않고 주인에게 걸려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이 재산의 주인이 아닐 뿐만 아니라 자기 생명의 주인도 아님을 알고, ‘자기 자신’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떠나야 할 일입니다. 

진정, 주인께 달려 있는 이는 탐욕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그 탐욕의 온상지인 ‘자기 자신’이라는 우상을 떠나야 할 일입니다. 사실, 탐욕은 자기 자신을 채우고 자신을 주인으로 중히 여기는 데서 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진정 주님께 소유당한 사람만이 탐욕으로부터 떠나게 되고, 탐욕을 채우는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탐욕으로부터 떠난 사람은 자신에게 소유당한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께 소유당한 사람입니다. 묘한 것은 하느님께 소유당한 사람은 하느님을 소유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느님의 소유가 되면서 하느님을 소유하게 됩니다. 

결국, 하느님은 우리를 소유하기에 우리의 주인이 되시지만, 동시에 우리를 소유하기에 우리의 소유가 되어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가지게 되면, 다른 모든 것들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데레사 성녀는 말합니다. 

“나에게는 하느님 외에는 아무 것도 필요치 않습니다.” 

그리고 안토니오 더블류도 말합니다. 

“예수님을 가지면 전부를 가진 것이 됩니다.”

하오니, 주님, 전부인 당신이 저를 차지하소서. 당신께 온전히 소유당한 자 되게 하소서! 제 마음의 곳간에 탐욕이 아니라 사랑을, 제 자신이 아니라 주님을 채우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2,15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주님!
탐욕의 온상지인 
제 자신을 경계하게 하소서.

제 곳간이 아니라 
당신 곳간에 희망을 두게 하소서.

제 곳간이 비워지고 
당신 곳간이 채워지게 하소서.

제 뜻이 비워지고 
당신 뜻의 거룩함을 이루소서. 

주님, 당신 안에서 
자족하는 법을 배우게 하시고,
있는 그대로에 
감사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저주 받은 돈도 축복이 되게 하시는 분

복권이 당첨되었으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우리나라 돈으로 3억 원 상당의 복권에 당첨된 사나이의 가족이 벌이던 자축 파티가 살인극으로 돌변하여 일가족이 패가망신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93년 9월 25일 스페인에서 있었습니다.

스페인 바로셀로나 경찰은 이날 현지의 한 청년이 복권이 당첨돼 4천 9백만 페세타(약 3억 원)를 타게 되자 지난 23일 가족과 함께 잔치를 벌이고 즐기던 중 가족에게 나눠 줄 액수를 놓고 17세의 여동생과 심하게 말다툼하다가 그만 칼로 동생을 살해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자기 형에게 자신에게도 유산을 나누어 달라고 말해달라고 청합니다. 유산이라면 형제에게 모두 주었을 테지만 형이 모두 가로채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시선은 전혀 돈에 있지 않습니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예수님은 돈이 공평하게 분배되게 하시기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돈보다는 사랑에 신경 쓰도록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불행은 돈 때문에 깨지는 관계 때문입니다. 

월간잡지 'MONEY'의 통계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82%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 돈이라고 합니다. 동시에 미국인의 53%가 최고로 걱정하는 것도 돈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돈보다 관계에 집중하라고 하십니다. 

안식일에 유태인 세 명이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당시에는 은행이 없었기 때문에 세 사람은 가지고 있던 돈을 함께 파묻었었습니다. 그런데 세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몰래 그곳에 되돌아와서 돈을 꺼내 가지고 가 버렸습니다. 

다음날 세 사람은 현자로 알려져 있던 솔로몬왕에게 가서, 세 사람 중에서 누가 돈을 가져갔는가를 알아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왕은 “당신들 세 분은 매우 현명한 분들이니까 우선 내가 지금 곤란을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당신들 세 분의 문제는 내가 해결해 주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젊은 아가씨가 한 남자와 결혼하기 약속했습니다. 얼마 후 아가씨는 다른 남자와 사랑하게 되어, 처음의 남자를 만나 헤어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위자료도 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남자는 위자료는 필요 없다고 하면서, 그녀에게 파혼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노인에게 유괴되었습니다. 그녀는 ‘나는 결혼할 것을 약속했었던 남자에게 파혼하자고 요구했는데도 위자료도 내지 않고 허락받았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해주셔야 합니다.’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돈을 빼앗지 않고 그녀를 그냥 놓아주었습니다.”
솔로몬 왕은 이 사람들 중에서 가장 칭찬받을 사람인가 하고 물었습니다. 

첫째 번 남자는 “그녀와의 파혼을 허락해 주면서도 위자료를 받지 않았던 남자가 가장 훌륭한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도 첫 번째 남자의 말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남자는 “이 이야기는 앞뒤가 맞지 않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첫째, 유괴라고 하는 것은 돈을 얻으려고 하는 짓인데, 돈도 받지 않고 놓아주었다는 것은 조리가 없는 이야기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솔로몬은 큰소리로, “그대가 돈을 훔친 범인이렷다! 다른 두 사람은 사랑이나 처녀와 약혼자 사이의 인간관계, 혹은 그사이의 긴장에 주목하는데, 그대는 오로지 돈만을 생각하고 있다. 그대가 범인임이 틀림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솔로몬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시면 돈보다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복권 당첨금 때문에 형제끼리 싸울 때 부모가 마음 아파함을 느꼈다면 그러한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두 남매에게 부모는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부모가 있다면 형제는 싸우지 못합니다. 그러면 돈이 관계를 깨지 못합니다. 돈 때문에 관계가 깨진다면 이는 예수님의 현존이 그 사람들에게는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나온 ‘마이다스의 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손만 대면 다 금으로 변한다는 뜻입니다. 사실 이 신화는 좋은 의미의 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미다스라는 왕이 신으로부터 자신이 만지는 모든 것이 금으로 변하는 축복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만지는 모든 것을 금으로 만들어버렸고 음식도 그래서 먹을 수 없었으며 나중에는 외동딸도 금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신이 인간이 황금을 제어할 능력을 갖지 못하게 한다면 신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역할을 하려고 하십니다. 돈을 나누는 게 문제가 아니라 돈 때문에 관계가 깨지는 일이 없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부모가 죽으며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라고 하는 마지막 말을 하듯,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을 믿으면 그래서 돈이 아무리 많아도 돈 때문에 안 좋은 일이 발생하는 일은 없습니다. 

신학자 팀 켈러(Tim Keller)는 “진정한 자유는 ‘구속의 부재가 아니라 오히려 올바른 구속을 찾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당신 멍에를 메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 멍에는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그리스도와 동행하십시오. 그러면 돈과 관계의 행복을 다 얻을 수 있습니다. 돈을 제어할 능력과 그릇이 된다면 하느님은 얼마든지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몇 년 전, 강원도에서의 강의를 마치고 영동 고속도로를 통해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앞 차가 조금 이상했습니다. 좌우로 흔들리더니 차선을 벗어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졸음운전인 것 같아서 경적을 울렸습니다. 하지만 경적이 들리지 않는지 계속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뒤에서 경적을 울려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차선을 옮겼습니다. 바로 그 순간 옆 차선을 달리던 트럭과 추돌했습니다. 정말로 큰 소리와 함께 문제의 승용차는 몇 차례 굴러서 보호난간에 부딪힌 뒤에 멈췄습니다.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혹시 몰라서 차간 거리를 두었고, 또 옆 차선으로 옮겼기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습니다. 갓길에 차를 대고 119에 사고 신고를 한 뒤에, 사고 차량으로 다가가니 다행히 운전자가 별 이상 없이 창문을 통해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섬뜩합니다. 만약 차간 거리를 지키지 않았다면, 또 차선을 옮기지 않았다면 저 역시 사고 당사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불과 몇 초의 차이로 말이지요. 
 
순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최악의 시간도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항상 깨어 있으라는 주님의 말씀은 이 정도면 괜찮다는 안일한 마음으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매 순간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합니다. 유산 분배에서 불합리한 부분을, 형의 정의롭지 못함을 고발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라고 하시면서, 세상의 것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음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이어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해주십니다. 세상의 물질적인 것이 전부이고 영원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 역시 영원한 것이 아니고, 이 세상 삶을 마친 뒤에는 아무런 쓸모없는 것임을 이야기하십니다. 
 
불교에서는 이 세상 삶을 찰나(刹那)의 시간이라고 합니다. 매우 짧은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짧은 시간을 어떻게 소비하고 있을까요? 이 세상 삶 안에서만 필요한 것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통해 하느님 앞에서 진정으로 부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많은 사람은 단순히 자신의 편견을 재배치해 놓고 이것이 새로운 생각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 윌리엄 제임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벌써 단풍이 떨어져 내립니다. 빠르게 떨어져 내리는 깊은 생명의 깨우침을 만납니다. 흉내만 내는 생명이 아니라 생명다운 생명을 살아야 할 우리의 오늘입니다. 생명이란 기쁜 생명이 진짜 생명입니다. 

진짜 생명은 욕심에 매이지 않는 삶의 기쁨을 살아갑니다. 우리모두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목숨의 나그네들입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하느님께로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나의 것이란 찾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입니다. 경계해야 할 탐욕이며 내려놓아야 할 탐욕입니다. 아쉬움과 미련도 내려놓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잘못된 삶의 자세를 바로잡아 주십니다. 

목숨으로 더 깊어지는 감사이며 진심어린 감사로 더 깊어지는 우리의 생명입니다. 뜨거운 심장의 울림이 탐욕이 아닌 하느님을 향한 감사와 기쁨의 기도이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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