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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7/04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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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민족들아, 손뼉을 쳐라. 기뻐 소리치며 하느님께 환호하여라.

하느님, 천상 은총으로 저희를 빛의 자녀가 되게 하셨으니 저희가 다시는 오류의 어둠 속을 헤매지 않고 언제나 진리의 빛 속에 살게 하소서.

2024년 7월 4일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7월 4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7월 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아모 7,10-17)
    가서 내 백성에게 예언하여라.

  • 오늘 복음
    (마태 9,1-8)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 오늘 말씀 카드
    (마태 9,6)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라.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라. (마태 9,6) by 피어나네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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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아모 7,10-17
오늘 제1독서

 

가서 내 백성에게 예언하여라.

그 무렵 

10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가 이스라엘 임금 예로보암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다. “아모스가 이스라엘 집안 한가운데에서 임금님을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그가 하는 모든 말을 더 이상 참아 낼 수가 없습니다. 

11 
아모스는 이런 말을 해 댑니다. ‘예로보암은 칼에 맞아 죽고 이스라엘은 제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갈 것이다.’” 

12 
그런 뒤에 아마츠야가 아모스에게 말하였다. “선견자야, 어서 유다 땅으로 달아나, 거기에서나 예언하며 밥을 벌어먹어라. 

13 
다시는 베텔에서 예언을 하지 마라. 이곳은 임금님의 성소이며 왕국의 성전이다.” 

14 
그러자 아모스가 아마츠야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15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16 
그러니 이제 너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너는 ‘이스라엘을 거슬러 예언하지 말고 이사악의 집안을 거슬러 설교하지 마라.’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아내는 이 성읍에서 창녀가 되고 네 아들딸들은 칼에 맞아 쓰러지며 네 땅은 측량줄로 재어 나누어지고 너 자신은 부정한 땅에서 죽으리라. 그리고 이스라엘은 제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가리라.’”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하느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네.

 

 

마태 9,1-8
오늘 복음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배에 오르시어 호수를 건너 당신께서 사시는 고을로 가셨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속으로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고 생각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느냐?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그런 다음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러자 그는 일어나 집으로 갔다. 


이 일을 보고 군중은 두려워하며,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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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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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 16:00 / 월 16:00 / 화 16:00 / 수 16:00 / 목 16:00 / 금 16:00 / 토 16:0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진정 의인을 죄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혹시 그 성읍 안에 의인이 쉰 명 있다면, 그래도 쓸어버리시렵니까? 그 안에 있는 의인 쉰 명 때문에라도 그곳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 …… “소돔 성읍 안에서 내가 의인 쉰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들을 보아서 그곳 전체를 용서해 주겠다”(창세 18,23-26). 

소돔 땅을 두고 시작된 하느님과 아브라함의 이 대화에서 의인의 숫자가 쉰 명에서 열 명까지 점점 줄어듭니다. 

“그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18,32). 

이 대화에서 우리는 중요한 신비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의인들의 믿음을 보시고 죄인들을 용서하여 주시는 신비입니다. 그리고 이 신비가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을 통하여 그대로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당신께 데려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우리가 기도할 때, 미사를 드릴 때, 신앙인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할 때, 오늘 복음이 알려 주는 이 신비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신앙생활 안에 있는 믿음을 보시고 누군가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찾으며 십자 성호를 긋는 순간, 그와 동시에 죄인들을 향한 자비와 용서도 함께 쏟아져 나옵니다. 기도가 메말라 갈 때마다, 신앙생활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마다 오늘 복음이 알려 주는 이 신비를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오늘 예수님을 찾으며 드린 그 한 번의 기도 안에는 누군가가 죄를 용서받게 되는 은총이 담겨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 모습 안에는 누군가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자비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주셔도 받아야 내 것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주겠다.” 

오늘 복음은 중풍 병자를 고쳐주시며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당신께 있다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율법 학자들과 권한 논쟁이 벌어졌는데 주님께서는 용서의 권한이 사람의 아들에게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사람의 아들이란 사람의 아들이 되신 당신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비단 주님만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뒤에 군중이 말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일을 보고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여기서 군중은 사람들에게도 그런 권한을 주신 것 때문에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니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본래는 하늘의 하느님께만 있는 것인데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써 그 권한을 땅에까지 끌어내리신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되신 당신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아들들인 우리에게도 용서의 권한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용서의 권한은 본래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 존재는 오히려 용서받아야 할 주제지요. 그러니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용서하는 권한을 받은 것은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이지요. 이로써 인간인 우리가 신으로 신분이 상승하는 셈입니다. 

그런데도 이 영광스러운 권한을 주심에 감사하지 않고, 이 권한을 포기하고 우리는 용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용서한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용서해주라고 하시는데도 용서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사랑이 하느님 사랑의 수준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야 할 때가 바로 이때입니다. 그리고 이때 필요한 것이 겸손과 믿음입니다. 지금 내가 하느님처럼 용서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고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청하면 그 능력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용기를 내어 다시 하느님 사랑과 용서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다시 복음 말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복음은 사람들에게 그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군중이 찬양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주시는 분이고 우리는 받는 존재들인데, 하느님께서 아무리 주셔도 우리가 받지 않으면 그 무슨 소용입니까? 

늘 그렇듯 하느님께서 주셔도 우리가 받아야 그것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용서의 능력도, 용서의 권한도, 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니 하느님께서 주시는 대로 넙죽 받아 하느님처럼 용서하는 사람의 아들들이 되기로 결심하고 용기를 청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사람을 치유하는 이가 나쁜 사람일 수 있을까?

“내 눈을 바라봐.”라고 하며 치유의 능력이 있음을 주장하던 허경영 씨가 지금 성추행 등의 혐의로 피소되었습니다. 허경영 씨에게 치유의 능력이 있는 것일까요? 만약 그것이 없다면 왜 수많은 사람이 수백억씩 바치면서 자기 몸을 만지는 것을 허락했을까요? 혹시 마귀도 치유의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치유하십니다. 중풍 병자의 치유는 곧 당신께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중풍 병자가 치유되는 것을 보며 이분이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지니신 하느님과 같으신 분임을 믿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것이 사탄의 힘으로 이루는 일이라고 여깁니다. 사탄도 능력이 있을까요? 

그리고리 라스푸틴(Grigori Rasputin)은 러시아의 신비주의자이자 자칭 성자로서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인 차르 니콜라스 2세의 가족과 가까워져 엄청난 권력과 부를 누렸던 인물입니다. 물론 그로 인해 러시아 제국이 막을 내렸습니다. 라스푸틴이 러시아 왕권과 친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치유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는 특히 차르의 혈우병 아들인 알렉세이에 대해 치유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아들을 끔찍이 아끼던 황제와 왕비는 그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한 치유 능력에도 불구하고 라스푸틴은 부패하고 부도덕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어떻게 치유의 능력이 있는데 사악할 수 있을까요? 

가만히 살펴보면 알렉세이는 혈우병으로부터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어느 정도 상태가 좋아지기는 했지만, 다시 아파서 내쫓았던 라스푸틴을 다시 불러드려야 했습니다. 

사탄은 치유의 능력이 없습니다. 사랑과 능력은 하느님의 것입니다. 사탄도 능력이 있다면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에 의미가 없어집니다. 하느님과 사탄은 대척점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고 사탄은 무능하고 하느님은 빛이시고 사탄은 어둠이고 하느님은 사랑이고 사탄은 증오입니다. 그러니 사탄이 치유의 기적을 발휘할 수는 없습니다. 

영화 ‘그린 마일’에 보면 험상궂은 흑인 살인범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는 살인범일 수 없을 정도로 온화하고 친절하고 착하고 심지어 치유의 능력도 있습니다. 사형수였던 그를 지키던 간수들은 그의 면모를 보며 사형수일 수 없음을 직감합니다. 

그러나 이를 증명할 수 없어 그가 사형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미워하는 이의 가족에게까지 치유의 기적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서지 않습니다. 사탄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영화 ‘블라인드’에 보면 자신을 피하는 못생기고 나이 많은 여자가 자신에게 다가오게 하려고 자기 눈을 찔러 눈이 보이지 않게 만드는 내용이 나옵니다. 누군가를 용서하고 치유하기 위해서는 내 피를 흘려야 합니다. 내 피를 흘리는 이가 타인에게 악한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악하다는 말은 모기란 뜻입니다. 모기가 누구를 위해 피를 흘려줄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보여주시기 위해 치유의 기적을 택하셨다면, 치유의 기적은 당신밖에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누군가를 믿기 이전에 먼저 그 사람에게서 치유의 기적이 나오는지 살펴야 합니다. 단순하게 믿어서 스트레스가 사라져 병이 낫는 정도는 안 됩니다. 

루르드처럼 과학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치유의 기적이 있어야 합니다. 악한 이들에게서 이런 기적은 절대 나올 수 없습니다. 사랑과 용서와 치유의 능력은 하나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저는 가톨릭 신부입니다. 1999년 1월 28일에 사제서품을 받고 지금까지도 사제로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혼은 했을까요? 당연히 안 했습니다.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신부는 독신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독신으로 사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저처럼 신앙적인 이유가 아닌 경제적인 이유, 또 사회적 이유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들을 많이 보기에, 이제는 사제로 독신을 지킨다고 해도 그렇게 특별하게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어떤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내가 세 명이나 있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는 곳에 사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세 번이나 결혼했고, 세 번 모두 헤어졌다고 하십니다. 왜 이렇게 세 번이나 결혼하셨냐고 물으니, “다 다른 줄 알았어요.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 달라질 줄 알았지만 살아보니 똑같더라고요.”라고 대답하십니다. 
 
이 형제님께서는 아내가 문제라는 생각에 이혼하고 결혼했지만, 다음 아내도 또 다음 아내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결국 누가 문제일까요? 
 
한 사람과 제대로 지내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누구와도 제대로 지낼 수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 사람과 잘 지내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도 잘 지낸다고 하더군요. 주님과도 그렇습니다. 주님과 좋은 관계를 맺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삽니다. 따라서 지금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지금 어떤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좋은 관계인가요? 나쁜 관계인가요? 
 
사람들이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주님께 데려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데려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중풍 병자가 착하고 의로운 사람이라는 말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또한 주님의 뜻에 맞게 산다는 말도 없습니다. 그저 데리고 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고서 치유를 받습니다. 어쩌면 중풍 병자와 데리고 온 사람들의 관계를 본 것이 아닐까요? 중풍 병자인 자신을 데리고 올 정도로 좋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라면 주님 당신과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음을 보신 것이지요. 그래서 용기를 내라는 위로의 말씀을 듣고 더불어 죄의 용서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되지 않습니까? 그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위로를 받게 하고, 또 죄의 용서라는 특별한 은총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으로 인해 나 역시 주님과 친밀한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내가 만나는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요? 이웃에 대해 계속해서 판단하고 단죄한다면, 나 역시 주님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위대한 일을 할 수 없다면, 작은 일을 훌륭하게 해네세요.

- 나폴레온 힐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좋은 이웃들의 믿음과 좋은 공동체의 믿음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믿음이란 다름 아닌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마음들을 나누는 것입니다. 약한 이들을 기꺼이 도와주는 것입니다. 

어제의 믿음이 아니라 오늘의 믿음이 더 간절하듯 공동체의 믿음이 우리의 오늘을 다시 살립니다. 공동체의 믿음으로 우리의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한 세상이 됩니다. 그만큼 믿음의 사람과 믿음이라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사람 사이에 믿음이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서로에게서 믿음을 선물로 받습니다. 막연한 믿음이 아닌 용기와 용서로 다시 일어나 걸어가게 하는 믿음입니다. 가슴 아픈 일들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하는 믿음의 실천입니다. 

우리의 길들은 우리의 힘만이 아니라 이웃들과 공동체의 믿음으로 깊게 이어지는 길들입니다. 마음이 믿음이 되고 믿음이 오늘이 되고 믿음은 돌아갈 우리의 집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라는 공동체에 속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사람들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함께 일어나 평상을 들고 걸어갑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믿음의 기쁜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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