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말씀묵상

24/11/05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다방 2024. 11. 5.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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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저를 버리지 마소서. 저의 하느님, 저를 멀리하지 마소서. 주님, 제 구원의 힘이시여, 어서 저를 도우소서.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은총을 베푸시어 저희가 하느님을 합당히 섬기고 영원한 행복을 바라보며 거침없이 달려가게 하소서.

2024년 11월 5일 연중 제31주간 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11월 5일 (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11월 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31주간 화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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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필리 2,5-11
오늘 제1독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셨습니다.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11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님이 말씀하신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루카 14,15-24
오늘 복음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그때에 

15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던 이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그분께,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였다. 

17 
그리고 잔치 시간이 되자 종을 보내어 초대받은 이들에게,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 하고 전하게 하였다. 

18 
그런데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양해를 구하기 시작하였다. 첫째 사람은 ‘내가 밭을 샀는데 나가서 그것을 보아야 하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고 그에게 말하였다. 

19 
다른 사람은 ‘내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부려 보려고 가는 길이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였다. 

20 
또 다른 사람은 ‘나는 방금 장가를 들었소. 그러니 갈 수가 없다오.’ 하였다. 

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알렸다. 그러자 집주인이 노하여 종에게 일렀다. ‘어서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 

22 
얼마 뒤에 종이 ‘주인님, 분부하신 대로 하였습니다만 아직도 자리가 남았습니다.’ 하자, 

23 
주인이 다시 종에게 일렀다.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11월 5일
전호준 스테파노 신부

 

✚ 교황님 11월 기도지향 00:23

✚ 미사시작 00:39

✚ 강론시작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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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 15:00 / 월 15:00 / 화 15:00 / 수 15:00 / 목 15:00 / 금 15:00 / 토 15:0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초대에 응답할 준비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초대받는 이들의 준비에 대해서 가르치십니다. 하느님 나라가 다 준비되어 있더라도 그 초대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하느님 나라를 누리지 못합니다. 

이 비유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맞으실 잔치를 다 준비하셨지만, 정작 초대받은 우리는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비유에서, 먼저 초대받은 사람들은 잔치에 별 관심이 없으며, 세상살이에서 중요하다는 일들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초대받았던 이들은 우리의 모습을 성찰하게 합니다. 그들이 잔치를 거절한 이유들은 우리를 당황스럽게 합니다. 그 이유들은 합당하며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잔치보다 더 앞세운 일들은 비윤리적인 행위가 아닐뿐더러 오히려 그들의 삶에서 필수적이고,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정당하고 중요한 일이라 할지라도 하느님 초대를 외면하게 한다면 악일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에게 시선을 두고, 그들을 돌보도록 부름받는 것은 하느님 나라로 초대하는 한 형태입니다. 그 초대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평소에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그 부름에 기꺼이 응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마음 깊은 곳에 그들을 도우려는 선의는 있지만, 중요하고 합당한 여러 이유로 그 초대를 미루고 거부합니다. 그러나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들을 제쳐 두고 초대에 응한다면,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하느님 나라 잔치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밑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어제 겸손한 마음을 지니라고 한 바오로가 오늘 우리가 지녀야 할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이라고 하며,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오늘 독서는 이어서 얘기합니다. 

이에 대해 바오로도 얘기하지만 주님도 몸소 말씀하신 적이 있지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우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배우고 지녀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마음’ 하면 불교가 더 많이 얘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지녀야 할 마음을 그리스도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불교도 하심(下心)이라는 표현으로 겸손을 가르치지만 주님과 바오로 사도는 밑에 있는 마음뿐 아니라 더 나아가 고통을 묵묵히 견디며 지는 마음까지 얘기합니다. 

사실 밑에 있으면 견뎌야 합니다. 밑에 있다는 것은 위에 뭐가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밑에 있는 것은 기둥이 위에 있는 천장을 견뎌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밑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십자가 밑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왕 밑에 있겠다고 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있자고 오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번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나는 지금 어떤 사람 밑에 있고 그 사람은 위에서 나를 짓누릅니다. 

그런데 위에서 나를 누르고 있고 그래서 무척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을 그저 힘들게 하는 사람 또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라고 생각하고 사람 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받아들일 때 기껍게 받아들이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억지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고 받아들이고 난 뒤에는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계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내려오시고,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높이 올리신 하느님께서 우리도 주님과 함께 하늘로 올려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높이 있는 사람은 도무지 알지 못하고,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경지입니다. 

주님의 산에 오를 이 누구인고? 그 손이 깨끗하고 뇌물 받지 않는 이라고 시편은 얘기하지만 오늘 저는 주님처럼 십자가 밑에 있는 사람이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

생활이 풍요로워지면서 사람들은 먹는 것을 찾아다니는데 길들여지고 있습니다. TV에서도, 인터넷 주요 검색 창에서도 “맛 집”이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맛 집”에 차려진 음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혀의 유쾌함을 넘어서는 “참된 맛 집”을 찾아나서야 할 일입니다. 

“그것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대체 최상의 “맛 집과 음식”을 어디에서 맛 볼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늘나라”라는 “맛 집”에서 먹는 “하늘나라의 음식”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곧 “구원의 천상음식”을 먹을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안식일에 예수님과 함께 초대되어, 바리사이 지도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말합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루카 14,15)

이는 당시 유대인들의 전통적 메시아사상을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곧 그들은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강림하시면 ‘큰 잔치’를 베풀 것인데, 그 잔치에는 유대인들만이 초대받았기에 자신들은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큰 잔치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이 비유에서, 잔치를 베푸시고 우리를 초대하신 분이 아버지 하느님이라면, 잔치에 사람들을 부르러 나간 “종”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종”이 잔치에 초대된 이들에게 잔치가 다 준비되었음을 전하지만, 그들은 초대를 거절합니다. 
사실, 그들은 이미 초대에 약속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밭이나 가축을 샀고, 막 장가를 들었다는 핑계로 초대 약속 지키기를 거절합니다. 그들은 세속의 헛된 망상에 쏠려 이 귀한 초대를 거절합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이미 잔치 준비가 다 되었으나 초대에 약속한 이들이 준비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아니, 약속을 지킬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역사에서 본다면, 이들은 지금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바리사이들이요, 유대교 회당의 지도자들일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일을 핑계로 복음 사명을 도외시하는 우리의 어리석고 나약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곧 하느님의 초대에 일방적으로 불참을 선언하고 마는 우리의 완고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잔치는 초대된 사람들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결코 지연되거나 취소되지는 않습니다. 

주인은 또 다시 “종”을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보냅니다. “고을의 한길”이 다양한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라면, “골목”은 소외된 사람들이 은밀히 다니는 길을 나타낸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지도자들이 아니라 일반 평범한 사람들과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 먼 이들과 다리 저는 이들을 초대합니다. 

그들은 비록 인간적으로 멸시를 당하고 경제적으로 아무런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밭이나 소를 사지도 장가를 가지도 못했지만, 주인의 배려와 사랑에 응답하여 잔치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주인은 또 다시 “종”을 “큰길”과 “울타리 쪽”, 곧 성 밖으로 보내어 그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들어오게 하라고 합니다. 주인의 ‘애타는 사랑’입니다. 그리하여, 성 밖의 다른 민족들이 초대를 받고 잔치에 들어갑니다. 

결국,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행복한 사람”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혼인잔치에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저희가 당신의 이 존귀한 부르심에 응답하게 하소서. 당신의 호의를 무시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몸소 따르고 실행하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4,17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

 

주님!
당신은 잔치 상을 차리시고, 
저희를 부르십니다.

당신은 준비가 되셨지만, 
저희는 마음이 딴 데 가 있습니다.

지금 베풀어지는 당신의 사랑, 
당신의 호의에 응답하게 하소서

당신을 무시하는 일이 없게 하시고
당신의 몸과 말씀으로 차린 음식으로
제 영혼이 차오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본당 공동체가 하나 되게 하는 가장 완전한 길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이들이 누구냐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은 종들을 보내어 사람들을 잔치에 초대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돈에, 어떤 사람들은 명예에, 어떤 사람들은 쾌락에 집착하여 그 초대에 응하지 않습니다. 미사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어서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 저는 이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라고 하십니다. 이전에는 집사람들과 친척들을 불렀다면, 이제는 ‘한길과 골목’으로 나아가라고 합니다. 한길과 골목은 가난한 이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도 자리가 남자 주인은 이번에는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라고 명령합니다. 점점 더 어려운 일을 시키는 것입니다. 집 안 사람에게 소식을 전하는 것은 쉽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는 것은 조금 어렵습니다. 
그런데 큰길로 나아가 그들을 데려오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가난한 이들이야 부족한 게 많아서 잔칫상에 쉽게 나오겠지만,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냉담자 회두, 가난한 이들을 향한 선교, 그다음은 길거리 선교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가두선교의 열정이 많이 식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령께서 그 본당에 충만히 활동하지 않으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령강림이 있었을 때 제자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밖으로 뛰쳐나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모습이 가두선교입니다. 

하느님은 필요한 자에게 그만큼 성령님을 부어주십니다. 모세에게는 엄청난 성령의 힘을 지팡이에 넣어 주셨습니다. 그 지팡이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고 바다도 갈랐습니다. 그 힘을 통해 한 것은 무엇일까요? 서로 갈라졌던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가 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모세를 따라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와 갈라질 수 없었습니다. 모세를 따르지 않으면 만나도 먹지 못하고 바위에서 흘러나오는 물도 마시지 못하기 때문에 살 수가 없습니다. 물론 모세에게 불만도 품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느님과 계약을 이루어 계약의 백성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먼저 성령이 충만해야 밖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그런 의도를 가져야 합니다. 매일 강론하는 이에게 성령을 더 주실까요, 아니면 평일 강론은 안 하고 주일 강론도 그냥 자기 생각만 말하는 사제에게 성령을 더 주실까요? 우리 의도가 중요합니다. 본당이 결국엔 밖으로 나아가 선교하겠다는 열정이 있다면 주님은 그 사명에 맞는 성령은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그러한 본당에 어떤 일을 이루실까요? 대구교구 이판석 신부님은 지산성당에 있을 때 가두선교를 통해 7년간(1995~2002) 3,200명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본당이 하나 분가될 수 있었습니다. 

2007년엔 서울 성내동 성당에서는 60일간 가두선교를 하여 5,000명에게 안내 책자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때 1,600명에게 자기소개서를 받았고 그중에서 400명이 입교 등록을 하였습니다. 그중 300명이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가두선교는 확실히 효과가 있습니다. 그만큼 큰 희생과 용기가 따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때 성령께서 함께하셔서 이 성당에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은 무엇일까요? 바로 본당의 일치입니다. 일치된 본당은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누립니다. 하느님 집을 어떻게 해서든 가득 차게 하도록 노력합시다. 그러면 성령으로 본당이 일치되고 행복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진정한 행복

자수성가해서 큰 재산을 모은 분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성공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그 성공을 만들었으니 얼마나 자랑스럽고 행복하겠냐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갔다가 암이 발견되었습니다. 몇 번의 수술을 했지만, 결국 이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뒤 이분의 자녀들 사이에 재산 상속 문제로 법적 분쟁이 생겼고, 이제 명절이 되어도 자녀들은 서로 만나지도 않습니다. 이 고인을 과연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분이 과연 행복한 사람일까요? 오히려 불행한 사람이라고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이 세상 삶에는 성공도 실패도 없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냥 각자의 인생만 있을 뿐입니다. 재벌 회장에게 성공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이를 더 좋은 인생, 즉 행복한 인생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저 자기의 인생을 잘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것에 행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며 자기 삶을 사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셨지요. 돈이 없어도, 세상의 지위가 높지 않아도 하느님 안에서 행복한 사람을 우리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을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자기가 선택하는 많은 삶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하느님 나라에서의 행복에 관해 이야기하십니다. 처음에 초대받은 사람은 여러 가지 이유로 초대에 응하지 않습니다. ‘밭에 가려고, 겨릿소를 부려 보려고, 장가를 들어서….’ 이런 이유로 응하지 않은 사람의 자리를 ‘가난한 사람들, 장애인들, 눈먼 이들, 다리 저는 이들’이 차지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의 초대는 그분의 주도권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그 초대에 우리는 무조건 응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느님 나라의 초대에 응답했을 때만 가능했습니다. 세상 것을 위한 삶이 진정한 성공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 것이 좋다면서 이것에 대한 욕심과 이기심을 내세워 초대해 주신 주님께 어떤 이유나 양해 따위로 요청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느님의 부르심에 앞설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곧바로 응답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 안에서는 행복의 삶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내는 영원 안에서 자신의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성공입니다.

 

오늘의 명언

고통은 그 아픔 때문에 두려운 것이 아니라, 자신을 포기하게 만들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라. 그것이 너를 삼키지 못하도록.

- 데오 그라시아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낙엽처럼 떨어져 내리는 계절의 시간 속에서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를 만납니다. 아낌없이 초대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소중한 때를 늘 놓치며 사는 우리들 삶입니다.

상을 차려 주어도 음식을 맛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우리들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하느님만 계시고 있어야 할 우리들은 없습니다.

여전히 다른 것들을 꽉 붙잡고 사는 우리들입니다. 기다림만이 가득한 하느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하느님께로 가는 길을 잊고 삽니다.

우리의 그림자가 너무 많습니다. 기다림이 밥상을 만들어냅니다. 뜨겁고 기쁘게 하느님 사랑을 다시 받아들이는 회개의 시간입니다.

모든 것에는 마지막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 안에서 가득 차게 하시고 우리들은 사라질 것들에 마음 빼앗기며 삽니다.

하느님의 초대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얼른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하는 기쁜 날 되십시오. 땅으로 내려오는 낙엽처럼 얼른 하느님께로 내려오는 기쁜 회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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