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말씀묵상

24/10/31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다방 2024. 10. 31.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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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 안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자라나게 하시고 저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2024년 10월 31일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10월 31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10월 3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에페 6,10-20)
    모든 채비를 마치고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

  • 오늘 복음
    (루카 13,31-35)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

  • 오늘 말씀 카드
    (에페 6,13)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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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 6,10-20
오늘 제1독서

 

모든 채비를 마치고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

형제 여러분, 

10 
주님 안에서 그분의 강한 힘을 받아 굳세어지십시오. 

11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12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 

13 
그러므로 악한 날에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채비를 마치고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 

14 
그리하여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15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십시오. 

16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불화살을 그 방패로 막아서 끌 수 있을 것입니다. 

17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18 
여러분은 늘 성령 안에서 온갖 기도와 간구를 올려 간청하십시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인내를 다하고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며 깨어 있으십시오. 

19 
그리고 내가 입을 열면 말씀이 주어져 복음의 신비를 담대히 알릴 수 있도록 나를 위해서도 간구해 주십시오. 

20 
이 복음을 전하는 사절인 내가 비록 사슬에 매여 있어도, 말을 해야 할 때에 이 복음에 힘입어 담대해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찬미받으소서. 하늘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

 

 

루카 13,31-35
오늘 복음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

31 
그때에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3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33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35 
보라, 너희 집은 버려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10월 31일
이동현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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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 팔로티회 : 미사(15:00) 후 성시간(16:00)
    주일 15:00 / 월 15:00 / 화 15:00 / 수 15:00 / 목 15:00 / 금 15:00 / 토 15:0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계속 가면 죽으리라는 것을 알면서 계속 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루카 13,33).

계속 가면 죽으리라는 것을 알면서 계속 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루카 복음서에서 예루살렘의 의미는 뚜렷하고,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은 이미 죽음과 부활의 시작입니다. 오늘 복음의 장면도 그러한 맥락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쫓아내시고 병을 고치시며, 복음을 선포하시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음을 아십니다. 

헤로데가 교활하지만 막상 힘은 없어 여우와 같다고 하시면서도, 예언자가 예루살렘에서 죽는 것은 여우 같은 헤로데 한 사람의 탓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예언자의 운명임을 받아들이십니다.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는다는 것은 박해와 거부를 피하여 도망가는 것이고, 제1독서에서도 나온 표현을 빌린다면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에페 6,19) 선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도는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할 수 있기를 갈망합니다(6,19-20 참조). 

이 ‘담대함’은 드러내 놓고 분명하게 말하는 것, 비유를 쓰거나 모호하게 돌려 말하지 않고 숨김없이 밝히는 것,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것을 뜻하며,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와 요한(4,13.29.31 참조), 바오로(9,27.28 참조), 바오로와 바르나바(13,46; 14,3 참조) 등에게 적용됩니다. 

특히 사도행전의 마지막 구절에서는 바오로가 로마에 잡혀가서도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쳤다.”(28,31)라고 말합니다.

죽음도 막지 못하는 담대함, 반대를 받는 것은 말씀을 선포하는 이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기에 예수님께서도, 사도들도 망설임 없이 죽음을 향하여 걸어갔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선포하고 복음대로 살아야 할 때, 우리에게도 이러한 담대함을 주시기를 청하여 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우리의 주적(主敵)?

주적(主敵)이라는 말을 군사적으로 씁니다. 요즘 와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라고 합니다.
 
미국과 일본은 동맹이라고 하고 북한을 주적이라고 하니 이것은 너무도 잘못된 주적 개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느 나라도 적이라고 생각지 말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하지만 굳이 적을 둬야 한다고 해도 동족을 주적으로 하는 것은 잘못된 주적 개념입니다.
 
북한이 먼저 남과 북은 이제 더 이상 동족이 아니라고 선언했지만 그것은 김정은이 그렇게 선언한 것이니 우리는 철부지가 선언한 것이라고 치고 여전히 동족이라고 해야 하는데 우리도 같이 주적이라고 하여 똑같이 철부지이고, 북한이 우크라이나에 전투 병력을 보낸다고 전선을 한반도를 넘어 우크라이나까지 그리고 러시아까지 넓히려는 우리 정부의 권력자들이 철부지이고 악의 세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적 개념을 잘 가져야 하는데
오늘 바오로 사도는 신앙적으로도 주적 개념을 잘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전투 상대가 인간이 되어선 안 됩니다. 아무리 우리 인간이 서로 찌르고 상처 준다고 원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사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 말씀은 인간을 원수로 여기지 말라는 말씀과 같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전에 여러 번 얘기한 적 있듯이 가까이 있기에 서로 찌르는 것입니다. 멀리 있으면 찌르려고 해도 찌를 수 없잖아요?
 
그러니 가까운 부부가, 형제가, 이웃이 상처를 가장 많이 주고받습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상처를 주는 사람이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는 말이고, 바로 이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요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적은 인간이 아니고 상처 주는 가까운 이웃도 아니며, 이들을 원수로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악한 생각과 악한 세력입니다.
 
어제는 수녀님들과 미사를 드리는데 가장 중요한 성찬의 전례 중에 정말 너무도 느닷없이 어떤 형제와 안 좋았던 것이 생각나면서 분심이 들었고 떨쳐버리려고 해도 그 생각이 계속 나 이것은 악령의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처음이 아닙니다. 미사 중에서도 가장 거룩한 순간에 잡생각이나 나쁜 생각이 드는 경험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이 악령의 짓이라는 생각이 점점 들었고 굳어진 것입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인간을 주적으로 삼지 말고, 인간을 죄짓게 하는 것들을 주적으로 삼아야 하고, 죄 중에서도 미워하게 하는 악의 세력들을 주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미워해야 할 것은 미워하게 하는 것이지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일생 이것을 놓치지 않고 산다면 이런 우리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 아닐 것이고, 그러기에 하루하루 그리고 오늘 하루 이것을 놓치지 않고 살기로 다짐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죽음에 직면하신 장면’과 ‘예루살렘 멸망을 예고하신 장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합니다.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루카 13,31)

바리사이들의 이 말은 얼핏 들으면, 예수님께 호의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예수님의 여행을 방해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헤로데를 ‘여우’라고 지칭하시면서 그에게 가서 전하라고 합니다.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루카 13,32)

예수님께서는 그 어떠한 인간적 장애뿐만 아니라 정치권력의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계획과 당신의 사명수행을 관철’하십니다. 곧 당신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진하여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루카 13,33)

“가야 한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신다는 것’을, ‘예루살렘에서 죽음을 맞이하신다.’는 말씀은 그분의 뜻에 따라 ‘당신의 삶을 완성하시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자진하여 당신의 길을 가심’을 밝히십니다. 곧 담대하고 의연하고 결연한 의지로 당당하게 당신의 길을 가실 것을 밝히십니다. (마치, 최초의 불교경전 숫파니파타에 나오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라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을 연상시켜줍니다.)

그것은 헤로데가 베들레헴의 아이들을 모두 살해하면서도 이루지 못했고,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끊임없이 음모를 꾸몄지만 이루지 못했던, ‘당신의 죽음’을 이제 스스로 이루시러 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오늘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가 제시하고 있는 길을 먼저 예수님께서 가신 것입니다. 곧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평화의 복음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잡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성령의 칼을 쥐고 담대하게 가는 길입니다.’(에페 6,13-17 참조).

이처럼, 예수님께서 ‘사명수행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었듯이’,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따름에 있어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고’(에페 6,13)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우리가 가야할 길을 계속 가야겠습니다.”(루카 13,33).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3,33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주님!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가야할 길을 계속 가게 하소서. 
자신이 죽어 타인을 살리는 길을!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평화의 복음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잡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성령의 칼을 쥐고
담대하게 가야할 길을 가게 하소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 순종의 길을 가오니
당신이 하고자 하신 바를 이루소서.

당신 안에서
제 삶이 완성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그리스도인에게 막연한 불안이 없는 이유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두려움으로 예수님의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루카 13,31)

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루카 13,32-33)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생명에 집착하는 겁쟁이로 봅니다. 그래야 한다고 강요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 정체성이 ‘예언자’라고 하십니다. 예언자는 목숨을 걸고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직무를 수행하도록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그 이전에는 죽게 하지 않으실 것을 아십니다. 

사람들은 막연한 불안을 가지고 삽니다. 언제 죽을지, 죽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례로 예언자직을 수행하는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베트남 전쟁에 맥주 배달하러 간 한 남자의 실화를 그린 ‘지상최대 맥주 배달 작전’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1967년 뉴욕시 인우드에서 성당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 마시는 걸 좋아하는 ‘치키 도너휴’가 주인공입니다. 

미국은 북베트남과 한창 전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치키의 친구들 전사 소식이 계속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치키와 가장 친했던 토미까지 행방불명이었습니다. 토니는 치키가 나라를 위해 전쟁에 참여하도록 독려한 친구였습니다. 그는 술김에 자신 친구들을 찾아 여전히 미국이 그들을 지지한다는 의미로 맥주를 전해주고 오겠다고 소리칩니다. 

이 소문은 온 마을에 퍼집니다. 치키의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전쟁터에 아들과 애인을 떠나보낸 이들은 그들을 만나게 되면 자신들이 주는 선물을 전해주라고 많은 양의 맥주와 선물들을 싸 줍니다. 가족과 친구들은 치키가 당연히 안 갈 것이라고 은근히 무시합니다. 하지만 그는 점점 자신을 믿고 선물을 맡기는 사람들을 실망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베트남으로 떠나는 배를 알아봅니다. 혹시 자리가 없으면 핑계라도 대겠지만 3시간 뒤에 출발하는 배에 딱 한 자리가 비어 있었습니다. 그는 운명처럼 맥주를 들고 급유 담당으로 배를 탑니다. 

2개월 후에 베트남에 도착하고 사흘 동안 휴가를 얻습니다. 혼자 친구들에게 맥주 배달을 왔다는 그를 군인들은 모두 C.I.A. 요원으로 알고 도와줍니다. 미치지 않고서는 그런 일로 전쟁터로 올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다른 친구를 찾으러 최전방까지 종횡무진으로 누비고 다닐 수 있었습니다. 

점점 그는 자신을 C.I.A.로 믿고 도와주는 군인 장교들의 도움을 받는 것에 익숙해집니다. 물론 진짜 C.I.A.에게 쫓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종군 기자들보다 더 훤하게 전쟁의 상황을 파악해갑니다. 그리고 의미 없는 전쟁에 자신이 친구의 입대를 종용한 것을 후회합니다. 친구들은 처음엔 이런 미친 짓을 하는 치키에게 화를 내다가도 나중엔 고마워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치키에게 거짓으로 보도되는 전쟁의 참상을 올바로 깨닫고 미국으로 건너와 그 사실을 알려 빨리 전쟁이 종식되게 하도록 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사명을 모르고 오히려 전쟁을 찬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막상 전쟁터에 가자 불안과 공포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칩니다. 만약 이것이 하느님의 사명으로 인식했다면, 그는 그곳에서 죽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죽음의 때와 장소는 알 수 없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베트남에서는 불안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나의 예언자직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알면 지금 이 시각에 나는 절대 죽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와 그 장소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목숨을 잃는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물론 그때를 대비해 믿음을 키워가기는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하느님께서 주신 예언자직이 있습니다. 

야누슈 코르착은 폴란드계 유대인 의사였습니다. 그는 거의 고아처럼 자란 탓에 부모가 끌려고 홀로 남은 유대인 아이들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고아원을 만들어 아이들을 돌보았습니다. 

하지만 독일군들이 들이닥쳤고 코르착은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소풍을 가자고 했습니다. 독일군들은 고르착은 갈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위험할 때 부모가 자녀를 버리는 일이 어디 있겠느냐며 그들과 함께 당당하게 가스실로 향했습니다. 

비르짓다 성녀의 ‘일곱 번의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 죽기 한 달 전에 죽을 때를 알려주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이는 이 기도를 바치는 이는 예언자직을 수행하고 있을 것이란 뜻입니다. 어떤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면 그 사명이 끝나기 전까지는 데려가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 사명이 완수되어 가면 ‘이젠 때가 되어 오는구나!’를 명확히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이전이나 그 때나 불안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나를 봉헌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무인도에 책 세 권을 가져갈 수 있다면 어떤 책을 가져갈 것입니까?

이 질문은 뉴욕의 유명 문학잡지 ‘파리 리뷰’가 작가들에게 물어본 질문입니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 마이클 세이본은 ‘모비딕’, ‘율리시스’ 그리고 이런 책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코코넛으로 진짜 비행기를 만드는 법’을 가져가겠다고 재치 있게 답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책을 가져가겠습니까? 저의 경우, ‘성경’ 하나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하느님 말씀이 담겨 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성경에는 모든 장르가 다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 한 권만으로도 많은 책(실제 73권이지만)을 들고 가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수록 참으로 놀랍습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미사 때만 듣는 성경이었지만, 신학교에 들어간 뒤 지금 사제로 25년 넘게 살면서까지 계속 가까이에 두고 일고 있습니다. 지루한 것 같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매번 새롭게 다가오는 하느님의 말씀이며, 이 말씀은 우리 삶 안에서 힘차게 울려 퍼집니다. 그래서 일상 삶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 체험을 늘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하느님을 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상 삶이 새롭지 않고 지겹고 힘들다고만 판단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하느님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없이는 늘 부족함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아무리 짧은 순간도 충분히 의미 있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지금 삶에 만족할 수 있게 됩니다. 
 
바리사이 몇 사람이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라고 경고합니다. 예수님과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던 그들이 정말로 예수님을 생각해서 했던 말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하느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가는 것을 방해할 의도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계획과 사명에 끝까지 충실할 것을 이야기하십니다.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루카 13,32.33) 
 
죽음의 위협이 가득한 예루살렘입니다. 역사 안에서도 하느님의 예언자를 거부하고 박해했던 예루살렘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예루살렘이 이제는 하느님을 거부하고 박해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런 위협에 굴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지금의 당신 길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고통과 시련에 피하려고만 하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하느님 체험을 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즉, 하느님 뜻을 찾으면서 그 뜻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모범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친구’라는 인디언 말은 ‘내 슬픔을 자기 등에 짊어지고 가는 자’이다.

- 인디언 명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비어지는 가을 들판을 바라봅니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더 아픈 길을 걸어갑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이 바로 이 길을 걸어 가십니다. 언제나 좋은 지향은 좋은 삶으로 이어집니다. 

삶다운 삶이 시작됩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우리의 생활이 바로 역사가 됩니다. 사랑의 모든 역사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사명에 충실한 이들을 통해 오는 역사이며 참된 사랑의 성장입니다. 

목숨과 바꿀 수난의 길도 피하지 않으며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향하십니다. 하느님의 사랑까지 거절하는 우리들을 묵묵히 받아내십니다. 마지막까지 온전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살지 못하는 우리자신을 반성합니다. 우리들을 향한 예수님의 아픔과 괴로움을 만나는 고통의 시간입니다. 아무 것도 가져갈 것이 없는 우리들임에도 욕심은 가까이 온 예수님까지 알아보지 못합니다. 

무릎을 꿇고 애도해야 할 대상은 우리자신입니다. 애매모호한 욕심의 길에서 벗어나 참된 복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랑의 우리들이길 기도드립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모두 복음의 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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