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선으로 초대합니다!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17주일 -
21년 7월 25일 (일) 온라인 미사와 강론입니다.
✠ 오늘 제1독서
엘리사 예언자는 맏물로 만든 보리 빵 스무 개로 백 명이나 되는 사람을 먹입니다.
✠ 오늘 제2독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라며,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시라고 합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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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당송
하느님은 거룩한 거처에 계시네. 하느님은 한마음으로 모인 이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시고, 백성에게 권능과 힘을 주시네.
제1독서
2열왕 4장 42-44절
먹고도 남을 것이다.
그 무렵
42
어떤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 왔다. 그는 맏물로 만든 보리 빵 스무 개와 햇곡식 이삭을 자루에 담아, 하느님의 사람에게 가져왔다. 엘리사는 “이 군중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하고 일렀다.
43
그러나 그의 시종은 “이것을 어떻게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엘리사가 다시 말하였다. “이 군중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주님께서 이들이 먹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44
그리하여 그것을 사람들에게 내놓으니, 과연 주님의 말씀대로 그들이 먹고도 남았다.
화답송
주님,
당신 손을 펼치시어
저희를
은혜로 채워 주소서.
주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당신 나라의 영광을 노래하고, 당신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주님, 당신 손을 펼치시어 저희를 은혜로 채워 주소서.
눈이란 눈이 모두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은 제때에 먹을 것을 주시나이다. 당신은 손을 펼치시어,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은혜로 채워 주시나이다. 주님, 당신 손을 펼치시어 저희를 은혜로 채워 주소서.
주님은 가시는 길마다 의로우시고 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시네. 주님은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진실하게 부르는 모든 이에게 가까이 계시네. 주님, 당신 손을 펼치시어 저희를 은혜로 채워 주소서.
제2독서
에페 4장 1-6절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입니다.
형제 여러분,
1
주님 안에서 수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3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4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6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복음환호송
알렐루야!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나셨네.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네.
알렐루야!
복음
요한 6장 1-15절
예수님께서는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셨다.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2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3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앉으셨다.
4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
5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7
필립보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8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9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11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12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그래서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 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14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영성체송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늘 안드레아처럼 묻습니다. 아이가 가지고 있던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원하는 대로 주시어,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예수님의 표징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어떤 고백을 합니까?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저희가 성체를 받아 모시며 언제나 성자의 수난을 기념하오니 성자께서 극진한 사랑으로 베풀어 주신 이 선물이 저희 구원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21년 7월 25일 (일)
팔로티회 매일미사
21년 7월 25일 (일) 15시
명동성당 매일미사
21년 7월 25일 (일)
매일미사
최종훈 토마스 신부
죽기 위해서 먹는 빵.
“살기 위해서 먹는가? 먹기 위해서 사는가?” 음식을 두고 이런 장난스러운 질문을 하는 것이 실례같지만, 굳이 답을 해야 한다면 이른바 ‘맛집 투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저는 “살기 위해 먹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 질문에는 저마다 성향에 따라 답이 달라지겠지요.
그러나 가톨릭 신자라면 적어도 다음의 질문에 대해서만큼은 정답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살기 위해서 먹습니까? 아니면 죽기 위해서 먹습니까?”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신앙 안에서는 ‘어떻게 먹느냐’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먹고 있습니까?
오늘 복음을 통하여 두 가지 모습의 빵을 떠올려 봅니다. 한 가지는, 그저 자신의 배를 채우고자 저 혼자 숨기고 먹는 빵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부족하고 초라하지만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많은 사람 앞에 내어놓은 아이의 빵입니다.
빵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지만, 그 빵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함께 살아가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 초라한 빵이 아무 소용없다는 포기와 절망은, 다만 살기 위해서 먹는 빵일 뿐입니다.
반면에 부족함을 느끼면서도 조심스레 내어놓은 아이의 빵은 작은 봉헌임에도 미안함과 감사한 마음이 깃든 빵입니다. 그 빵을 예수님께서는 모두를 살리는 빵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빵을 먹고 있습니까?
우리는 또 다른 빵을 먹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살기 위하여 먹는 빵이 아니고, 그것만 먹고 살아갈 수도 없는 빵입니다. 어찌 보면 그것은 죽기 위해서 먹는 빵입니다. 내어놓고 봉헌하고 희생하기 위해서 먹는 빵입니다.
그 빵은 인간의 생명을 버리고 하느님의 생명을 선택하게 이끌어 줍니다. 바로 예수님의 몸, 성체입니다. 그분께서 주신 성체를 받아 모시는 우리는 자신을 죽이고 함께 살아가는 삶을 택하였으면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신다는 것은 내가 살기 위하여 먹는 것조차도 또한 누군가를 살리고자 먹는 것임을 깨달았으면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가장 많이 가지는 자는 유통업자다.
오늘은 요한복음의 5천 명을 먹이신 기적입니다. 공관복음과는 차별되게 요한복음의 5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빵과 물고기를 나누어주는 사람이 제자들이 아니고 예수님입니다. 제자들은 그저 사람들을 자리 잡고 앉게 하고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들을 모으는 것입니다.
‘빵’은 보통 ‘말씀’을 상징합니다. 가르침일 수도 있고 은총이신 말씀 자체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4)
이런 면에서 제자들은 ‘말씀의 유통업자’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팔려고 하는 말씀에 관심을 두게 하고 팔고 남은 것들은 자신들의 몫이 됩니다. 그런데 결국 자신들의 몫이 가장 많습니다.
오늘은 제가 돈을 벌어본 적은 없지만 돈 버는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실제로 사회에서 살아가시는 분들은 비웃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냥 순수한 저의 생각이고 제 말이 틀려도 상관없습니다. 결국, 우리에게 남아야 할 것은 돈이 아니라 생명을 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러 면에서 ‘유통업자’들이 가장 많이 남는 것 같습니다. 유통업자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제가 제주도 여행 갔을 때 함께 간 누군가가 자연산 전복을 먹어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동안 찾아다녀도 오분자기나 양식전복은 많이 보았어도 자연산은 찾지 못했습니다.
얼마 뒤 분당 횟집에 갔는데 주방장이 커다란 자연산 전복을 들고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어디서 잡은 것이냐고 물어보니 제주도에서 나온 것이라 했습니다. 자연산 전복은 크고 값도 비싸서 잡은 현지인들은 먹지 못하고 도시로 팔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비싸서 사 먹으려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어떻게 될까요? 유통업자가 처리해야 합니다. 사 먹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꼭 필요한 양만큼만 사기에 남는 것은 유통업자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유통업자가 가장 많이 남는구나!’
왜냐하면, 팔면서 이윤을 추구하고 또 남는 것들도 자신들의 몫이 되기 때문입니다. 생산하는 사람은 아까워서 못 먹고 사는 사람은 딱 먹을 만큼만 사기에 유통업자만 좋은 것입니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가치 있는 물건을 생산하면서 동시에 유통할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큰 자본이 없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유통을 하며 재산과 기술을 축적하여 생산까지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일 것입니다.
하지만 남아봐야 처치 곤란한 상황이 되는 것들을 팔면 어떨까요? 스트레스가 심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만약 학용품을 판다라고 가정해봅시다. 학용품을 팔고 많은 재고가 남았습니다. 결국, 이것은 유통하는 사람이 다 사용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채소나 과일이 남아도 시간이 지나면 상하기에 빨리 처리해야 합니다.
절대로 위의 것들을 파시는 분들을 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돈을 더 벌기 위해서라고 가정하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가정하에서, 저 같으면 이런 것보다는 남아도 가치가 되는 것을 팔 것 같습니다. 물론 처음에 시작하는 비용이 많이 들기는 하겠지만 말입니다. 비싼 명품 가방이나 옷, 혹은 금은보석을 팔다가 남으면 그것이 또 나중에라도 팔 수 있는 것이 되기에 사실 이런 것들을 파는 것이 더 돈을 벌기에 유리할 것입니다.
만약 내가 파는 것이 축적될 수 있는 기술이라면 어떨까요? 컴퓨터 기술이나 백신 기술과 같은 것이라면 어떨까요? 이것들도 팔고 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축적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축적된 기술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더 높은 성을 쌓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회사들은 가치와 기술을 생산하거나 유통하는 회사들입니다.
세계 대기업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애플과 같은 회사들은 기술을 팔면서도 그 기술을 축적하는 회사들이고 아마존이나 페이스북, 구글이나 알리바바와 같은 기업들은 가진 기술을 통해 사람을 이어주거나 물건을 유통해 주는 기업들입니다. 단순히 생산만 해서는 돈이 남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람을 이어주거나 가치를 파는 이들이 가장 많이 남깁니다.
사제는 무엇을 파는 사람일까요? 바로 ‘말씀’을 파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최대한 많이 팔기 위해 신자들을 모으고 그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하다 보면 남기는 게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남는 이 ‘말씀’은 생명처럼 고귀하고 또 축적되는 기술과 같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제게 언제부터 강론을 썼느냐고 물으신 분이 있기에 생각해보니 주일 강론은 신학생 때부터 썼습니다. 그러는 동안 제가 한 강론의 가장 큰 덕을 본 사람은 저 자신이었습니다. 전하려는 말씀을 통해 제가 더 많이 깨닫게 되고 또 그동안 축적된 기술도 많습니다. 사제는 그리스도와 신자들을 이어주는 역할입니다. 유통업자와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5천 명을 먹인 기적을 체험한 이들 중에 가장 큰 수혜자는 누구일까요? 예수님께서 그것이 당신 살과 피라고 말씀하실 때 끝까지 그분 곁에 남고자 했던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바로 말씀의 유통업자인 제자들뿐이었습니다. 세상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오늘 기적만 보면 말씀의 가장 큰 수혜자는 그 말씀을 유통해 주는 복음 전파자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보편사제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복음을 전해야 하는 예언자직을 수행하기 위해 연결해 주는 유통업자의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에 고프지 않고 항상 충만하여 기쁨과 평화를 누리려면 말씀을 이어주는 이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의 가장 큰 수혜자는 평신도라도 성경 말씀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이는 가르쳐 본 사람은 다 압니다. 자신이 가르치면서 더 배운다는 것을.
더 가지고 싶은 게 있으십니까? 우선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지 알고 그것을 유통하는 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돈입니까? 명예입니까? 세속의 즐거움입니까? 그런 것들은 가져도 더 가지고 싶고 공허하기만 합니다. 신앙인이라면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이젠 말씀의 유통업자가 되기로 마음먹으면 됩니다. 말씀으로 충만한 사람은 절대 목마르지 않고 배고프지 않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빵의 기적
어렸을 때, 시골에 가면 수도가 없고 대신 펌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펌프질을 해서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펌프의 윗부분에 한 바가지의 물을 부어야 했습니다. 이 물의 이름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마중물’입니다.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에 놀러 가서 처음 본 이 펌프는 상당히 낯설었습니다. 마중물을 넣지도 않고 그냥 펌프질만 했다가 아무런 물도 얻지 못했었지요. 그러나 이 한 바가지의 마중물을 부으니, 엄청나게 많은 물을 펌프는 제게 주었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이런 사랑의 샘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중물을 찾지 못해서 사랑의 샘에서 사랑을 끌어 올리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요? 바로 주님께서 마중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을 보고 주님을 닮아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노력에서 넘치는 사랑이 내 안에서 펑펑 쏟아지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빵의 기적을 볼 수 있습니다. 장정만도 오천 명이 모여있는 상황입니다. 예수님께서 필립보에게 먼저 묻습니다.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예수님의 사랑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제자 필립보입니다. 하지만 자기들도 가지고 있는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자기들도 쫄쫄 굶고 있는 상황에서 저 많은 사람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빵을 사 오라는 듯한 이 말씀에 답답했을 것입니다. 현실적인 상황을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서 안드레아가 아이가 가져온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이야기합니다.
제자들이 먹기에도 너무나도 부족한 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봉헌을 원하셨습니다. 무조건 필요한 것을 베풀어주시는 주님이 아닌, 우리의 것을 먼저 나눌 때 주님께서는 더 큰 기적을 일으켜서 모두가 부족하지 않게 하십니다. 즉, 너무나 부족한 빵과 물고기라도 모두를 위해 봉헌할 때, 이것이 마중물이 되어 모두가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 실천을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너무 자그마한 사랑 실천이라면서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물질적인 봉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도해주는 것, 지금 내 옆의 사람을 위한 작은 배려를 실천하는 것 역시 우리의 작은 봉헌이고,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러한 작은 사랑의 실천이 마중물이 되어 주님의 커다란 기적을 일구어낼 수 있습니다.
내 사랑 실천이 마중물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오늘도 사랑의 실천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사람들이 왜 새로운 생각을 두려워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오래된 생각이 두렵다.
- 존 케이지
칠극
판토하의 ‘칠극’을 읽었습니다. 조선 시대,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천주교를 받아들이는 데 큰 역할을 한 책입니다. 칠극에서 으뜸가는 일곱 가지 죄를 이렇게 말합니다. 이를 가톨릭 교리 안에서 ‘칠죄종’이라고 하지요. 죄와 악습을 낳는 죄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교만, 질투, 인색, 분노, 음식에 빠짐, 여색에 빠짐, 선에 게으름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 죄를 이기는 일곱 가지 덕은 이렇습니다.
첫째, 겸양으로 교만을 이긴다.
둘째, 남을 아끼고 사랑하며 질투를 이긴다.
셋째, 재물을 희사하여 인색을 이긴다.
넷째, 인내를 길러 분노를 이긴다.
다섯째, 담백함으로 먹고 마시는 것에 빠지는 것을 이긴다.
여섯째, 욕망을 끊어서 여색에 빠지는 것을 이긴다.
일곱째, 천주의 일에 부지런히 힘 쏟아 선행에 게으른 것을 이긴다.
정말로 필요한 덕이 아닐까요? 사실 일곱 가지 죄에 자주 넘어가는 우리입니다. 그 유혹의 힘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를 이기는 덕이 꼭 필요합니다.
판도하의 ‘칠극’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사람을 정화하는 빵.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요한 6, 10)
사람이 있는 곳에 빵이 있다. 사람들 속에 빵이 있다. 사람이 빵이 된다. 서로에게 빵이 되는 만남이 참된 만남이다. 아름다운 삶은 빵의 삶으로 드러난다. 빵을 통해 사람이 누군지를 알게된다.
빵은 배신하지 않는다. 사람을 정화하는 빵이다. 빵으로 하늘과 사람은 하나가 된다. 신앙은 우리가 빵이 되는 것이다. 빵으로 우리모두는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가 된다. 사람들은 사랑의 빵으로 살아가는 이들이다.
빵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빵이 되는 사랑이다.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아주신다. 사람은 많아도 빵은 없다. 사랑은 많이 이야기하지만 우리에게 참된 사랑은 없다.
하느님께서 빵이 되셨다. 살아있는 사람만이 빵을 먹듯 살아있는 사람이란 빵처럼 사랑하는 사람이다. 빵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이 되고 빵이 되는 것이다. 빵이 사람을 만든다.
빵이 영원한 생명의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빵을 진실로 믿는다. 사랑의 빵이 필요한 우리는 사랑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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