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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다방

팔로티회 김태광 신부 21년 6월 미사 강론 모음

by 평화다방 2021.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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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티회
김태광 신부
21년 6월
미사 강론 모음

- 팔로티회 홍천 자비의 경당 -

 

 

팔로티회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2021년 6월 강론 모음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2021년 6월 강론 모음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팔로티회 자비의 경당 미사
6월 강론은
계속 업데이트 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저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부르심을 받은 저희의 희망을 알게 하여 주소서. (에페 1w장 17-18절 참조)

 

2021년 6월 1일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강론
복음 : 마르 12장 13-17절

 

 

2021년 6월 1일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팔로티회 홍천 양덕원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집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저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부르심을 받은
저희의 희망을 알게 하여 주소서.

- 에페 1,17-18 참조 -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토빗이 참새 똥에 두 눈이 멀듯이 우리가 살다 보면 두 눈을 뜨고 있지만 또 다른 재물이나 명예 등 무언가에 눈이 멀 수 있습니다.

현실을 살아가면서 가려진 눈으로 왜곡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고정관념 편견에 대해 고해성사를 하고 죄사함을 받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오해도 하고 판단에 이르기도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느님께 나아갈 수밖에 없는 한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잘못된 생각과 길을 가더라도 참으시고 우리에게 마련해 주신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제대로 가고 있는가 의심하고 도망치기도 하지만 지나고 보면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려 드려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가난과 고통 이 모든 것을 하느님께 온전히 돌려 드려야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며 당신의 섭리를 드러내실 공간이 마련됩니다. 그래서 우리 삶을 통해 예수님을 증거할 때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하느님을 알게 됩니다. 유스티노 순교자처럼 진리를 알았다면 진리를 위해 온몸을 투신하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성인에게 전구를 청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라는 에페소서의 말씀처럼 우리 마음은 악하고 끊임없이 왜곡하고 오류에 살아가고 있지만, 예수성심을 온전히 마음에 모시자는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님의 2021년 6월 1일 강론입니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마르 12,43-44)

 

 

2021년 6월 5일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강론
복음 : 마르 12장 38-44절

 

 

2021년 6월 5일
팔로티회 홍천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집전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 마르 12장 43-44절 -

 

살아계신 하느님은 우리가 살아있기를 원하십니다

과부는 생활비를 다 바치고 어떻게 살아갈까요? 과부가 생활비 전부를 헌금함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은 갚아주신다는 분명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기대가 들어가지 않은 과부의 마음은 이미 하느님께 닿아있었을 것입니다.

왜 우리는 하느님께 봉헌하며 그 안에 머무르나요? 하느님의 뜻과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달라고 하는 것은 우상숭배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은 우리가 살아있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방식대로 하느님 안에 머물면 안 됩니다. 하느님은 당신만의 방법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지상에 매어있지 말고 기쁘고 슬프고 괴로운 우리의 모든 삶을 하느님께 들어 올려야 합니다. 온전히 하느님께 들어 올릴 때 우리 마음에 들어갈 여유가 생가고 하느님이 움직일 공간이 생깁니다. 우리가 땅에 매여 있다는 건 하느님께서 역사하고 싶으셔도 섭리할 여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느님 뜻 안에 모든 것을 봉헌할 때 하느님께서 당신의 섭리를 나타내십니다.

우리는 언젠가 하느님 앞에서 심판받고 하느님의 집으로 나아가는 순례자일 뿐입니다. 하늘로 닿아있지 않고 땅에 매여있는 기도를 바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목적으로 하는 것이 지상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외형적이 아니라 그 사람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내 마음의 중심은 하느님께 있나요? 이 세상에 있나요? 매일 미사 봉헌하며 촛불 켜고 목표로 하는 기도를 바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내 마음 중심에 계시다면 내 존재는 그분을 증거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느님과 닿아있는 사람은 시련이 닥치고 고통 중에 있을 때 용기를 잃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그 뒤에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축복해 주시고 응답해 주신다고 섣불리 기뻐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영혼은 영원한 생명에 목적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의 현란함과 쾌락과 주어지는 거짓된 축복에 눈멀지 않습니다.

진정한 하느님의 관계 속에서 하느님이 나를 어떠한 처지에 놓이게 하시고 벌을 내리실지라도 하느님은 더 큰 자비로 나를 들어 올리십니다. 그러한 관계가 나에게 형성될 때 나를 송두리째 봉헌할 수밖에 없는 내 마음의 결심이 생기게 됩니다. 이럴 때 하느님이 나를 자유롭게 움직이시며 상상하지도 못한 앞날에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보이기 위한 신앙이 아닌 증언하는 신앙인은 이미 그 안에 하느님이 함께 계시기에 하느님이 나를 움직이시는 대로 내 의지가 협력해서 주님을 증언하는 삶으로 변화됩니다. 하느님을 마음에 중심에 갖고 있는 사람은 하느님께서도 이 세상에서 주님을 증거할 수 있도록 복을 주십니다.

하느님을 모든 중심에 두며 거듭 태어날 수 있는 은총을 달라고 자비를 구하자는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님의 2021년 6월 5일 강론입니다.

 

 


 

주 하느님, 당신은 거룩하시옵니다. (시편 99장 9ㄷ절 참조)

 

 

2021년 6월 9일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강론
복음 : 마태 5장 17-19절

 

 

2021년 6월 9일
팔로티회 홍천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집전

 

주 하느님,
당신은 거룩하시옵니다.

- 시편 99장 9ㄷ절 참조 -

 

계명과 율법은 무엇과 함께 생각해야 합니까?

탈출기 19~24장에서 계약을 체결하는 준비과정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먼저 계명을 주신 후 계약을 맺습니다. 계약은 하느님과 백성의 공적인 관계가 성립되는 절차입니다. 계명과 율법은 하느님과의 관계성 안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신 것은 그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당신을 섬기는 백성을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시기 위해 그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계명과 율법을 지켜야 될 대상으로서만 생각한다면 또 다른 올가미에 갇히게 됩니다. 거룩하신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우리는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레위 19,2)

왜 신자가 되었고, 왜 십계명과 교회의 법을 지켜야 합니까? 하느님이 우리를 교회로 부르시어 당신 자녀로 삼으셨기에 세상에서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통해 거룩하신 하느님을 드러내고 증거해야 합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마태 5,17)

하느님과 맺는 관계는 돌에 새겨져 있는 문자를 법으로 준수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새겨주시는 그 법을 내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 힘입어서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면 우리는 저절로 그 계약의 백성답게 살아가게 됩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 사랑의 계명을 통해서 나를 구원하시고 보호해 주시며 은총과 구원의 길로 이끄십니다.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주신 사랑이 내 안에 머물러 있다면 나도 그 사랑 안에서 사랑의 계명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마태 5,19)

진심이 전달이 안되면 그것은 형식적인 관계일 뿐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랑으로 우리는 이 법을 지킬 수밖에 없고 더불어 이웃에게도 그 계명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를 부르시고 나에게 합당한 삶을 살아가도록 은총을 베푸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하느님의 사랑에 어긋나고 배신하는 죄에 빠져들고 죄를 지을지라도 당신 자녀를 늘 회개하고 회복시키는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를 변화시킨다는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님의 2021년 6월 9일 강론입니다.

 

 


 

마태 5장 39절 -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2021년 6월 14일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강론
복음 : 마태 5장 38-42절

 

 

2021년 6월 14일
팔로티회 홍천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 집전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 마태 5장 39절 -

 

 

악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도구는 십자가다.

악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 악으로 대할 때 악의 함정에 또다시 빠져들게 됩니다. 악이 원하는 것은 악이 전염되길 바라고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계셨지만 자비는 심판을 이긴다는 그 정의를 완성하기 위해서 당신 정의를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의 정의가 아니라 사랑의 정의를 드러내심으로 결국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죄를 지었으면 그에 따른 응당한 벌을 받아야 사회정의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법이 있고 그 중심에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내신 사랑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순조롭게 이루어질까요?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지만 이 세상은 그것을 가만히 놔두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뒤에 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함께하시니 가진 것이 없어도 우리는 부자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걸려 넘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일을 마음에 둬봤자 악의 유혹에 빠질 뿐 빨리 빠져나와야 합니다. 악에 걸려 넘어갈 수 있었지만 주님이 함께 계시어 내 마음의 걸림돌을 없애고 악에서 구해주신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과거의 어떤 기억과 상처 속으로 들어가 보면 악의 진흙탕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그런 기억에 빠져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피해 입고 상처받은 것에만 얽매여 있습니다. 매듭이 묶이기 전에 매듭을 풀어야 합니다. 이런 매듭이 우리 영혼을 끊임없이 힘들게 하니까요. 우리가 진정 맺어야 할 것은 하느님과의 매듭뿐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피해를 받고 상처를 주고받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봐야 합니다. 십자가만이 악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며 길이라는 김태광 아우구스티노 신부님의 2021년 6월 14일 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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