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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11/28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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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며 주님의 집으로 가리라.

“주님의 집에 가자!”할 때 나는 몹시 기뻤노라. 예루살렘아, 네 성문에 우리 발이 이미 서 있노라. 예루살렘은 튼튼한 도성, 견고하게 세워졌네. 그리로 지파들이 올라가네. 주님의 지파들이 올라가네. 나의 형제와 벗들을 위하여 비노라. “너에게 평화가 있기를!” 주 우리 하느님의 집을 위하여, 너의 행복을 나는 기원하리라.

 

2022년 11월 28일 대림 제1주간 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랜선으로 초대합니다!

2022년 11월 2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대림 제1주간 월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이사 4,2-6)
    생존자들에게 자랑이 되리라.

  • 오늘 복음
    (마태 8,5-11)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하늘 나라로 모여 올 것이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11월 28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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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기도

 

주 하느님, 성자 그리스도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며 비오니 그분께서 저희를 찾아와 문을 두드리실 때 깨어 기도하고 찬미하며 그분을 맞아들이게 하소서.

 

 

복음
마태 8장 5-11절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하늘 나라로
모여 올 것이다.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7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10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인영균 끌레멘스 신부 강론

 

 

2022년 11월 28일 (월)
인영균 끌레멘스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학문 바오로 신부 강론

 

 

2022년 11월 28일 (월)
조학문 바오로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예수님께 온전히 내맡기는 굳은 믿음이 필요하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백인대장의 병든 종을 고치시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카파르나움입니다. 카파르나움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의 많은 시간을 보내셨으며, 코라진과 벳사이다와 함께 당신 권능을 가장 많이 드러내신 고장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병을 앓던 베드로의 장모를 낫게 하셨고, 중풍 병자를 고치셨으며,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이방인 백인대장의 종을 치유하시기까지 합니다.

특별히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의 대답을 들으신 다음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왜일까요? 유다인이 아닌 백인대장의 믿음은 예수님께서 환자의 병을 먼 거리에서 치유하실 수 있다거나, 질병에 관한 특별한 권능을 지니신다고 믿는 것에만 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부여된 더욱더 깊고 특별한 ‘권위’, 곧 하느님을 대신하여 말씀하시고 일하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였기 때문입니다. 마치 로마 군대에서 백 명의 군인을 총괄하는 백인대장의 말이 로마 황제를 대변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도 하느님의 말씀을 드러낸다는 굳건한 믿음과 신뢰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고단한 일상을 살다 보니 우리도 특별한 은사에 목말라합니다. 갑작스럽게 닥친 불행과 질병 때문에 마음 졸이며 간절히 하느님께 치유를 청하기도 합니다. 고통의 현실에서 샘솟는 목마름과 간절함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백인대장 같이 예수님께 온전히 내맡기는 굳은 믿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오늘의 말씀 묵상
프란치스코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대림절의 모범

 

교회는 대림절 첫 복음으로 백인대장의 종을 주님께서 치유해주신 얘기를 택했고, 복음 환호성은 “주 하느님, 어서 오시어 저희를 구원하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입니다. 

이 복음 환호성에 비추어 오늘 복음을 보면 백인대장은 주님께서 어서 오시어 구원해주시기를 바라고, 그래서 마침내 구원을 받는 대림 시기 우리의 모범입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셨고,.오늘 복음에서는 가파르나움까지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고, 가파르나움까지 찾아오신 것은 오시기를 당시 백인대장이나 지금의 우리가 바랐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바라고 청하지 않아도 주님은 오실 분이라는 말입니다. 

엄마는 꼭 와달라고 해야 집 떠나있는 자식을 찾아가는 분이 아닙니다. 청하지 않아도 그리고 청하기도 전에 찾아가시는데 주님도 그러십니다. 

오늘 주님께서도 종이 아프다는 백인대장의 말에 청하기도 전에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하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우리가 주님 오시기를 바라고, 초대하고, 기다려야 하는 것은 그러지 않으면 안 오시기 때문이 아니라 그래야 구원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바라야 하는 이유는 바라지 않는 우리가 되어서는 아니 되기 때문입니다..초대하고 기다려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라지도 청하지도 기다리지도 않는데 주님이 오시면 우리는 주님께서 오셨는지도 모를 것이고, 알더라도 주님을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청하지 않고, 청하기도 전에 주님이 오시는 것은 하느님의 자유로운 사랑이고,ㅈ바라고 청하고 기다리는 것은 우리 구원의 도리입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우리 구원의 도리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고자 한다면 다른 데서 구원을 찾지 않음은 물론, 하느님은 전능하실 뿐 아니라 사랑이시라는 것을 우리가 믿고 그 하느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리라는 희망을 우리가 잃지 않으며, 마침내 찾아오셨을 때 그 하느님을 우리가 사랑으로 모셔드려야겠습니다. 

구원이 오지만 구원을 모셔드리는 것은 우리 몫입니다. 사랑께서 찾아오시지만 그 사랑을 갈망하고 기다리고 모셔드리는 것은 우리 몫입니다. 

백인대장은 주님을 자기 집에 모실 자격이 없다고 했지만 그것은 그의 겸손이고 그의 갈망은 모실 자격이 충분하며 그래서 그의 겸손과 갈망은 대림절의 모범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유튜브 강론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조명연 마태오 신부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매일 7km 정도를 걷습니다. 뛰면 운동량이 더 늘어날 것 같아서 뛰었다가 무릎이 아파서 고생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부담 없는 걷기를 즐깁니다. 제 나이에 뛰기란 틀렸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팔십 대의 몸과 오십 대의 몸 중 어떤 몸이 더 뛰기에 적합한 몸일까요? 당연히 오십 대의 몸이라고 누구나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분은 팔십 대인데도 어떤 사람보다도 더 뛰어난 몸을 간직하고 계십니다. 
 
이분은 마라토너 남정조 할아버지입니다. 그것도 젊었을 때 마라톤을 시작하신 것이 아니라, 나이 일흔에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마라톤 입문 10년을 앞두고 풀코스 1,000회를 달성하셨습니다. 2012년에 처음 도전해서 대회에서 달린 거리만 42,195km로, 지구 한 바퀴를 넘어 달린 셈입니다. 이 기록은 대한민국에서 단 13명만 성취한 기록이라고 하더군요. 
 
나이 들면 걷기도 힘들다고 하는데, 이 할아버지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다는 마라톤을 지금도 꾸준히 하십니다. 불가능함은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다는 스스로에 대한 불신에 나오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께서도 믿음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하는 상태에서 다른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는 나를 통해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만드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로마인에게 종은 노예로서 상품이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백인대장은 예수님께 이 종을 위해 직접 와서 부탁했습니다. 상품이 아닌 사람으로 자기 종을 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랑에 사랑의 주님께서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겠지요. 주님께서는 사랑에 사랑을 더해 더 큰 사랑을 만드시는 분이 아닙니까? 그런데 직접 가시겠다는 예수님을 향해 자신에게 자격 없음을 이야기합니다. 
 
이교도인 로마인 백인대장은 예수님께서 자기 집에 오시면 당시 풍습에 따라 부정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마태 8,8)라고 고백합니다. 
 
이런 모습은 예수님을 믿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굳이 자기 집에 모시지 않아도 충분히 사랑하는 종을 고쳐주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렇게 사람을 사랑하고 당신을 향한 굳은 믿음을 갖춘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 잔칫상에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주님께 대한 믿음은 어떠한가요? 그 믿음에서 불가능한 일이 가능한 일로 내 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다만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내 경험이 있으면 그것을 나누면 됩니다. ‘내가 어떤 말을 해야 저 사람에게 위로가 될까’ 하는 마음은 나의 욕심입니다.

- 법륜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믿음에는 이방인과 토박이의 까다로운 구분이 없습니다. 믿음의 자격 앞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간절한 기도입니다. 믿음은 마음을 동반합니다. 마음을 만나는 것이 믿음이며 치유입니다. 믿음은 사람을 만들어가고 사람은 믿음으로 치유를 얻습니다. 

연민의 깊이가 곧 믿음의 깊이입니다. 믿음은 주님께 도움을 청하는 간절한 사랑입니다. 주님께서 하실 수 있도록 이 아픔을 믿음으로 내어드리는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내어드리는 것이 겸손입니다. 겸손은 높고 낮음의 관계가 아닌 너와 내가 결국 하나임을 알게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치유는 서로를 살립니다. 그래서 믿음은 우리모두를 깨어나게 합니다. 하느님의 믿음과 백인대장의 믿음에서 함께하는 믿음을 봅니다. 믿음은 고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믿음의 잔치상에는 믿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자리 잡아야 할 흔들리는 우리들 믿음입니다. 믿음의 자리는 도움의 자리이며 실행의 자리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실행으로 더 깊어지길 기도드립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믿음의 여정 앞에 필요한 것은 간절한 믿음뿐입니다. 간절한 믿음은 아무 것도 따지지 않는 간절한 겸손입니다. 내려오고 내려오면 말씀은 살이있는 치유로 자리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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