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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6월 14일 (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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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

 

 

2022년 6월 14일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께서 나봇의 포도밭을 차지한 아합의 죄를 물으십니다. 아합이 단식하자 주님께서는 재앙을 늦추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6월 14일 (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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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본기도

 

하느님, 하느님께 바라는 모든 이에게 힘을 주시니 자비로이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하느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희가 거룩한 은총의 도움으로 계명을 지키며 마음과 행동으로 하느님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복음
마태 5장 43-48절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김진호 비오 신부 강론

 

 

2022년 6월 14일 (화)
김진호 비오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심승우 마르티노 신부 강론

 

 

2022년 6월 14일 (화)
심승우 마르티노 신부 집전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 앞에서 자신을 참으로 낮춘 아합을 보시고 그에게서 재앙을 거두십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 앞에서 부족하고 부당한 죄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시편 말씀을 입으로 고백하며 주님의 자비를 청합니다. 

“하느님, 당신 자애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시편 51[50],3). 

하느님께서는 죄인이며 참으로 보잘것없는 우리를 자비로이 부르시어,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당신 자녀가 되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의 길로 초대해 주셨습니다.

한편 오늘 복음은 마태오 복음서의 여섯 가지 대당 명제(마태 5,21-48 참조) 가운데 마지막인 “원수를 사랑하여라.”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이미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말씀을 너무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좀 더 주목하게 되는 구절은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라는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인 줄 알았는데, 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의 중심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핵심 조건으로 원수에 대한 사랑과 박해하는 이들을 위한 기도를 요구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악인과 선인에게 똑같이 기회를 주시는 분이시고, 모든 이가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자비로우신 아버지이십니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성품을 본받고 따르며 아버지의 모습을 비추는 이들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하고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하는 일입니다. 서양 격언에 “선을 악으로 갚는 것은 마귀의 일이며, 선을 선으로 갚는 것은 사람의 일,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은 하느님의 일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고, 또한 하느님의 자녀로서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살기 위하여 하느님의 일을 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아버지를 닮아 사랑과 자비로 주위의 모든 사람을 품습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완전한 사람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늘 주님께서는 하늘의 아버지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라고 하시는데 여기서 완전한 사람은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완벽한 사람일까 생각케 됩니다. 

완벽한 사람이란 우리가 흔히 ‘빈틈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는 그런 인간적인 의미입니다. 

그러나 짐작하시듯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완전한 사람은 그런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허술한 사람이고 바보같은 사람입니다. 

어제 주님께서는 왼뺨을 때리는 사람에게 오른뺨을 대주고 오리가 아니라 십리까지 가주는 바보가 되라고 하셨는데 완전한 사람은 이처럼 바보같은 사람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 완전은 ‘하늘의 아버지처럼‘입니다.다른 말로 하면 ’판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아들이 아버지를 너무도 똑같이 닮으면 판박이라고 하지요. 

이것을 신앙적으로 표현하면 ‘하느님의 모상’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오늘 주님 말씀에 비춰 얘기하면 사랑의 모상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느님을 닮는다면 사랑을 닮아야 한다는 얘기이고, 사랑을 닮아야 하느님을 진정으로 닮은 것입니다. 하느님을 한마디로 얘기하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닮아야 할 하느님의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오늘 주님 말씀에 의하면 그것은 그 유명한 원수 사랑이고, 원수까지 사랑해야 완전한 사랑을 이룬 완전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원수까지 사랑해야 하느님 사랑에 도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어떻게 그 사랑에까지 도달할 수 있느냐 그것입니다. 나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입니까? 

나의 의지와 노력만으론 가능치 않습니다. 그러나 나의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순서로 치면 의지가 처음이고, 노력이 다음이며 은총이 그 다음입니다. 사랑하겠다는 우리의 의지. 원수까지 사랑하겠다는 우리의 의지가 우선 있어야 합니다. 

사랑할 마음을 조금도 일으키지 않거나 원수사랑은 가능치도 않다고 미리 포기하면 원수사랑은 첫걸음도 떼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의지적인 노력입니다. 물론 하느님 은총에 대한 믿음과 의탁과 함께. 그 이전에 나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함을 인정하고 청하는 겸손과 함께. 

그 다음은 실망치 않고 기도와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며 어쩌면 생애적인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원수사랑이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님을 안다면 쉽게 실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불가능한 것을 하라고 하지 않으셨을 거라고 믿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부모를 사랑하지 못하면 자녀도 사랑할 수 없는 이유

 

저희 어머니는 저를 낳기 전에 시누이를 그렇게 미워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낳아보니 제가 고모의 얼굴을 꼭 빼닮았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도 “자식은 엄마가 미워하는 사람을 꼭 빼닮는다”라는 말을 들어보셨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태어나게 해 주신다면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EBS 다큐 프라임 ‘엄마가 달라졌어요’에 한 엄마가 딸은 그렇게 사랑하는데 아들만 지나치게 미워하는 사례가 나왔습니다. 아들만 보면 아무 이유 없이 머리를 쥐어박고 소리를 지르곤 합니다. 자신도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잘 안되어 고통스러워합니다. 아들을 보면 그냥 밉습니다. 

편애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아무 이유 없이 미워하는 이유는 그런 사람과 같은 사람을 미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을 미워하면서 자기 자식이라고 미워하지 않으면 나는 이율배반적인 인간입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 혹시 남자 형제 중에 미운 형제가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심리 상담을 통해 어머니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보니 자신의 어머니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신 다음에 태어난 남동생만을 사랑한 그 엄마도 미웠고 남동생도 미웠습니다. 엄마의 모습을 닮지 않으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닮게 되었습니다. 자기 아들이 남동생처럼 여겨지고 딸은 불쌍한 자기 모습처럼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엄마에게 부모를 용서하는 심리치료를 했습니다. 자신이 그런 것처럼 어머니도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것을 깨닫고는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를 용서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보니 이전과는 다르게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껴안고 미안하다고 울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를 위해 기도해주라고 하십니다. 그런 이유는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반드시 내 삶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 악영향 중 하나가 ‘편애’입니다. 편애하고 있다면 반드시 내가 용서하지 못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분명 편애하는 이유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다르십니다. 사랑엔 편애가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하느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편애하면 그런 성향이 있는 이를 또 미워할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편애는 내가 미워하는 사람에 의해 사랑받지 못한 나에 대한 연민 때문에 나옵니다. 여기서 나 자신은 뱀입니다. 자아의 보복을 대신해 주고 편애하며 자아를 위로해주는 것입니다. 

‘안녕하세요’에 맏이를 지독히 싫어하는 한 아버지가 나왔습니다. 어머니가 제보한 것입니다. 왜 첫째만 그렇게 싫어하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앞뒤 안 가리는 자신을 너무 닮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나를 닮았다고 싫어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첫째를 싫어하는 것 때문에 아내와의 사이도 좋지 않습니다. 올바른 남편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잔소리를 쏟아붓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서 너무 싫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다시 맏이에게 쏟아냅니다. 둘째는 아빠 다음이 자신이라 생각하고 형을 무시합니다. 형의 머리를 때립니다. 아버지는 그래서 첫째만 혼을 냅니다. 이렇게 서열이 엉망이 됩니다. 

부모가 싸우는 것을 보면 어떠냐는 질문에 맏이가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자기 때문에 부모가 싸운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아빠는 그동안 자신이 서운하게 했던 것에 미안하여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사실은 아버지가 착실한 형만 사랑하고 자신은 무시했던 것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은 중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하여 돈을 벌어 썼지만, 아버지는 형에게만 용돈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둘째에게만 용돈을 주었던 것입니다. 
아빠는 맏이에게 미안하고 사랑한다며 안아줍니다. 아내도 눈물을 흘리며 앞으로는 잔소리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가족은 그렇게 하나가 됩니다.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이 미워지고 또 편애를 하는 것 같다면 빨리 살펴보십시오. 분명 내가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기도하면서 동시에 미워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바로 그 이유가 앞으로 나의 발목을 계속 잡으리라는 것을 명심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하느님의 사랑은 차별이 없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리 집 근처에는 제 또래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형, 누나들과 놀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히 친구의 존재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옆집에 새로 이사 왔는데, 그 집에는 제 또래의 아이가 있는 것입니다. 처음 보는 제 또래의 친구였고, 이제 낮에도 함께 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신났습니다. 
 
그 친구를 처음 만난 날, 저는 제가 제일 아끼는 딱지를 주었습니다. 친구에게 좋은 것을 먼저 줘야 친해질 수 있다는 형의 조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호의를 먼저 베풀었음에도 저와 함께 놀지 않았습니다. 그냥 제가 준 딱지만 보면서 이리저리 만져볼 뿐이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했을까요? 
 
딱지를 다시 빼앗았습니다. 놀자고 준 것인데, 놀지 않으니 빼앗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딱지를 뺏긴 친구는 “내 딱지, 내놔!!”라고 말하면서 울었고, 저는 “내 딱지야!!”라면서 울고…. 아주 난장판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합니다. 하지만 선물만을 바라보고 선물을 준 사람을 외면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미워질 것입니다. 나의 사랑을 바라보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것만을 바라보면서, 정작 주님의 사랑을 보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라는 구약의 말씀을 먼저 이야기하십니다. 이 구절은 레위기 19,18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보면, 이웃 사랑을 이야기할 뿐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아니 구약성경 전체를 봐도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확대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원수를 미워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적대자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냐는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차별이 없습니다. 선인이나 악인이나 다 너그럽게 대해주시는 분입니다. 이러한 완전한 사랑을 보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우리도 완전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이라도 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보지 않으면서, 적대시하고 미워하는 결과에만 집중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에 먼저 집중할 수 있을 때, 그분이 주시는 모든 은총에 더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길입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인생을 제대로 살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가능한 많은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 반 고흐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 5, 48)

 

사랑의 실천을 원하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시다. 사랑이란 사랑의 실천으로 주고받는 기쁨이다. 사람은 하느님에게서 사랑을 배우는 사랑의 존재들이다.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랑 없이는 사람이 될 수 없다. 올바른 실천이 사람을 만든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결코 원수를 사랑할 수 없고 원수를 용서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참사람이다. 사랑의 길 위에서 사람이 되어간다. 

올바르지 않은 것을 버리고 바꾸고 회개할 때 우리또한 온전한 사람이 되어간다. 사람은 하느님을 닮았다. 끊임없이 가장 좋은 사랑을 향하고 가장 좋은 사랑을 나누기 때문이다. 사랑이 사람을 만들어간다. 하느님 사랑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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