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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11/13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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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제 기도 당신 앞에 이르게 하소서. 제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저희에게 해로운 것을 모두 물리쳐 주시어 저희가 평안한 몸과 마음으로 자유로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11월 13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11월 1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11월 13일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지혜 7,22ㄴ―8,1)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다.

  • 오늘 복음
    (루카 17,20-25)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지혜 7,22ㄴ―8,1
오늘 제1독서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다.

22 지혜 안에 있는 정신은 명석하고 거룩하며 유일하고 다양하고 섬세하며 민첩하고 명료하고 청절하며 분명하고 손상될 수 없으며 선을 사랑하고 예리하며 

23 자유롭고 자비롭고 인자하며 항구하고 확고하고 평온하며 전능하고 모든 것을 살핀다. 또 명석하고 깨끗하며 아주 섬세한 정신들을 모두 통찰한다. 

24 지혜는 어떠한 움직임보다 재빠르고 그 순수함으로 모든 것을 통달하고 통찰한다. 

25 지혜는 하느님 권능의 숨결이고 전능하신 분의 영광의 순전한 발산이어서 어떠한 오점도 그 안으로 기어들지 못한다. 

26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며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이다. 

27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 안에 머무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28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함께 사는 사람만 사랑하신다. 

29 지혜는 해보다 아름답고 어떠한 별자리보다 빼어나며 빛과 견주어 보아도 그보다 더 밝음을 알 수 있다. 

30 밤은 빛을 밀어내지만 악은 지혜를 이겨 내지 못한다. 

8,1 지혜는 세상 끝에서 끝까지 힘차게 퍼져 가며 만물을 훌륭히 통솔한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루카 17,20-25
오늘 복음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그때에 

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2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23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저기에 계시다.’, 또는 ‘보라, 여기에 계시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24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25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11월 13일
박민호 요셉 신부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7:46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바로가기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오늘의 말씀 묵상 바로가기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동희 모세 신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미 와 있는 나라

오늘 복음은 루카 복음서의 종말론에 해당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에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나라가 오는 시간을 물었더니, 시간이 아닌 장소를 말씀하신 셈입니다.

시간을 말씀하시지 않은 까닭은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우리가 알아차릴 수 있는 방식으로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아무 때나 어디서나 누구나 볼 수 있는 그런 사건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예수님의 공생활을 관상하는 묵주 기도의 빛의 신비 3단은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심을 묵상합시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공생활 맨 처음부터 줄곧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가르치셨습니다. 그분 공생활의 첫 말씀은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였습니다.

특히 루카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나자렛 회당에서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는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를 읽으신 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4,21)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왔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당신의 인격과 활동에 일치시키셨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주도권은 하느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는 자기의 선함으로 얻어 내야 할 어떤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얻어 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어 받아들이고 응답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는지, 어디인지를 묻기보다 그 나라를 반갑게 맞아들이면서 그 나라에서 환영받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무엇이 우리 가운데에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오늘 주님께서는 동문서답하고 계십니다.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에 너희 가운데 있다고 답하시니 말입니다. 때를 묻는데 장소를 답으로 말씀하시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그런 것 같지만 그런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시간과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인격적인 문제라고 답하신 겁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3차원의 세계라고 흔히 말합니다. 시간과 공간이 있는 세계이고 한계가 있는 세계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께서 계신 곳이고, 하느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계시지요. 영원히 계시고 아니 계신 곳이 없이 어디든지 계시지요. 이 말을 뒤집으면 시작과 끝이 없고 어디에 국한되어 계시지 않습니다.

이 말은 또 하느님 안에 있으면 우리도 시간과 공간에 갇히지 않고 초월하지만 하느님 안에 있지 않으면 시간과 공간의 한계 안에 머물게 된다는 뜻이 됩니다. 문제는 유한한 우리 곧 한계가 있는 우리가 어떻게 한계를 초월하신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느냐 그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늘로 오를 수 있느냐 그것인데 바오로 사도는 이에 대해서 이렇게 간단히 얘기합니다. 우리가 올라갈 수도 없지만 올라갈 필요도 없다고. 그리스도께서 하늘나라를 가지고 내려오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잖습니까? 당신의 오심으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복음을 믿어 회개하면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고 하느님 나라는 우리 가운데 있게 됩니다. 그러니 하느님 나라가 미래 언제 오겠냐고 물을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으니 우리 가운데서 찾으라는 것이고, 찾을 것이 아니라 발견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은 언제 어디로 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오시고 이미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그러니 찾아다닐 필요가 없고 발견하면 되는 것이고 내 안에서 발견하고 우리 가운데서 발견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찾는 어리석음이 우리 가운데 있지 않은지, 우리 가운데 하느님께서 계셔야 하는데 어리석음이 있지 않은지 돌아보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지금 여기 이미 와 있는 하느님 나라

오늘 <복음>의 앞부분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말씀이요, 뒷부분은 ‘재림’에 대한 말씀입니다. 전자가 “이미” 와 있는 하느님 나라라면, 후자는 “아직 아니” 온 하느님 나라입니다. 전자가 하느님 나라의 ‘내면적 도래’라면, 후자는 하느님 나라의 ‘외면적 현현’에 해당하며, 전자가 ‘구속사’라면, 후자는 ‘종말론’에 해당합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루가 17,20)는 질문을 받으시고 대답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루카 17,20-21) 

이는 당시의 유대인들이 지니고 있었던 “하느님 나라의 때와 장소와 성격”에 대한 대전환이요 혁명적인 선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느님 나라”를 지상적이고 정치적, 민족적인 메시아 왕국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그래서 ‘하느님 나라’가 세워질 때, 자신들을 압제하는 로마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리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물리적인 의미로서의 하느님 나라가 아니라, 하느님의 주권과 통치가 실현되면 어디에서나 이루어지는 ‘하느님 다스림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당신의 오심과 함께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안에 ‘이미’ 임재 하는 나라로 선언하십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때’는 당신과 함께 이미 왔고, 하늘나라라는 “장소”는 공간적이거나 심리적인 내면이 아니라 “너희 가운데”라는 역사적이면서도 동시에 초월적인 하느님의 활동공간이며, 또한 그 나라는 민족적, 정치적이 아니라 당신의 활동과 통치와 주권이 미치는 곳이면 어디서나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 나라”는 이미 와 계신 당신과 함께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안에 ‘이미’, ‘지금 여기’, ‘우리들 가운데’, ‘와’ 있는 나라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재림”이 언제 어떻게 올 것인지, 그리고 그 전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루카 17,24-25) 

이는 “예수님의 재림”이 번개가 번쩍할 때처럼, 단박에 천지가 환해지듯이 동시에 즉각적으로 일어날 것이며, 동시에 범 우주적으로 일어날 것임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여기 있다. 저기 있다’라고 찾아 나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유토피아’(장소가 없는)가 아니라 분명한 장소, 곧 하느님의 백성인 하느님의 다스림이 이루어진 “우리들 안”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여기’ ‘이미’ ‘와 있는’ ‘하느님 나라’, 곧 ‘하느님의 다스림 안’에 머무는 일이요, 지금 ‘우리 가운데’ ‘와 계신’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7,21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주님!
저희를 비추시어
저희들 안에 이루신 
당신의 나라를 보게 하소서.

저희를 다스리시어
‘지금 여기’에 와 있는 
당신의 사랑을 살게 하소서.

저희를 변형하시어
번개가 치면 
단박에 천지가 환해지듯이 
저희의 온 정신과 영혼
삶과 방식이 바뀌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하느님 나라를 위한 겨자씨 믿음 만드는 법

찬미 예수님

프랑스 파리의 부유한 은행가 아들로 태어난 '자크 페쉬(Jacques Fesch)'는 24살에 인생의 막장에 도달했습니다. 그는 방탕한 생활로 빚더미에 올랐고, 은행 강도를 시도하다 경찰관을 살해했습니다. 그는 1957년, 단두대 이슬로 사라질 사형수였습니다. 

그가 갇힌 '상떼(Santé)' 감옥의 독방은 빛 한 점 없는 절망의 공간이었습니다. 죽음의 공포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신을 믿지 않았고, 세상과 자신을 저주했습니다. 

그런데 수감 1년 후,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어느 날 밤, 칠흑 같은 독방 안에서 그는 갑작스러운 '강렬한 빛'을 체험합니다. 그는 자신의 옥중 일기에 그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강렬한 외침이,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는 외침이 내 가슴속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살려주십시오!' 그 순간, 나는 믿었습니다. ... 그날 밤, 그분께서 내 감방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나는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자크 페쉬, [빛이 내 눈을 뜨게 하다(Light over the Scaffold)] 

더 놀라운 것은 그 이후의 변화입니다.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3년 동안, 그의 감방은 더 이상 지옥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좁은 감방 안에서 춤을 추었고, 찬미가를 불렀습니다. 그는 죽기 직전 딸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내 마음은 넘치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단다. 나는 이제 곧 그분을 만나러 간다. 그분은 나에게 '천국'을 미리 맛보게 해주셨다." 

사형수 자크 페쉬의 감방은 가장 비참한 곳이었지만, 그가 자기 안의 예수님을 만난 순간, 그곳은 가장 거룩한 '성전'이 되었고 '하느님 나라'가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옵니까?"  

그들은 하느님 나라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로마 제국을 물리치는 거대한 정치적 변혁으로 올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 

여기서 '너희 가운데(entos hymon)'라는 말은 '너희들 사이(관계)'라는 뜻도 있지만, 더 깊게는 '너희 안(내면)'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흔히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밖으로 헤맵니다. 돈을 더 벌면, 좋은 집에 살면, 건강해지면 행복할 거라 믿습니다. 하지만 동화 속 틸틸과 미틸이 온 세상을 헤매다 결국 자기 집 새장에서 파랑새를 발견했듯, 하느님 나라는 이미 우리 안에 와 있습니다. 

위대한 성 아우구스티누스도 이 진리를 뒤늦게 깨닫고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 ... 님은 제 안에 계셨거늘, 저는 밖에서 님을 찾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장소'가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 내면에 이미 와 계신 '그분'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자크 페쉬처럼 가장 비참한 순간에도, 내 안에 계신 그분을 만난다면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냈습니다. 배신과 죽음의 공포가 가득한 외부 환경 속에서도 그는 평정을 유지했습니다. 그 비결을 그는 [명상록]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너는 언제든지 네 자신 속으로 물러날 수 있다. 인간에게 자신의 영혼보다 더 조용하고 평화로운 은신처는 없다. 나는 내 안에 흔들리지 않는 성을 쌓았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믿음만 있다면 우리는 이미 우리 안의 '성전'에 있습니다. 세례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 집을 지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성전을 탐욕과 걱정, 미움이라는 먼지로 뒤덮어 놓고, 밖에서만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무너져 가는 다미아노 성당을 돌 하나하나 다시 쌓아 올렸듯, 우리도 매일 우리 내면의 성전을 재건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크 페쉬처럼, 가장 절박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살려주십시오!" 이 외침은 단순한 비명이 아닙니다. "오직 당신만이 나의 생명이십니다"라는 최고의 신앙고백입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도 비슷한 체험을 했습니다. 그는 반역죄로 사형 선고를 받고, 형장에 끌려가 기둥에 묶였습니다. 총살형 집행 5분 전이었습니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그는 비로소 온 마음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만약 저에게 다시 한번 생명이 주어진다면, 그 삶의 매 순간을 기적처럼 여기며 살겠습니다!" 

그 순간 황제의 특사로 감형되어 극적으로 살아난 그는, 이후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성경을 읽으며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살려달라"는 절박한 기도가 그에게 하느님 나라를 열어준 것입니다. 

정말 나는 진실하고 절박하게 그분께 바라는 게 있습니까? 가장 힘들 때, 가장 외로울 때, 길게 기도하려 하지 마십시오. 자크 페쉬처럼, 도스토옙스키처럼, 단 한 마디의 화살기도를 쏘아 올리십시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이 짧고 진실한 겨자씨만 한 외침들이 하나씩 쌓일 때,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세상 그 어떤 풍파에도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감사합니다. 덕분이에요. 좋았습니다. 사랑해요. 미안합니다. 제 탓입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존경합니다.” 등의 말은 어떤 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정답은 ‘뻔한 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평소에 이런 말을 잘 하지 않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당연하고 뻔한 말을 듣고 싶어 하기에, “고맙다는 말도 안 해.”라면서 서운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뻔한 말이지만, 따뜻함과 진정성을 가지고 있기에 사람들은 듣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이 뻔한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이 자기 가치를 밖으로 잘 드러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치 때문에 사람들은 좋아하고 또 함께 하려고 합니다.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도 좋지만, 향기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요? 뻔한 말의 반복에서 나의 아름다움이 드러납니다. 뻔한 말이지만 따뜻함과 진정성을 담아서 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만큼 이 세상도 따뜻하고 진정성 넘치는 곳이 될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질문합니다. 즉, ‘시기’에 관해 묻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가시적이고 정치적인 사건, 또는 극적인 종말론적 현상으로 기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그들의 기대대로 대답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루카 17,20) 
 
하느님의 나라는 그들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외적인 제도가 아니라, 하느님의 다스림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과 영혼 안에서 이루어지는 내적, 영적 실재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현존과 활동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 그분 말씀에 맞춰서 생활하는 사람을 통해 하느님의 나라는 존재하게 됩니다. 
 
이미 온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이 하느님의 나라 안에서는 어떠한 죄도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하느님의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느님 나라의 따뜻함과 진정성이 넘치는 모습을 우리가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뻔하다면서 그 모습을 외면하게 되면, 하느님의 나라에 사는 우리가 될 수 없습니다. 
 
세상의 거짓 가르침에 현혹되지 말고(루카 17,23), 영광에 앞선 고난의 길(루카 17,25)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오늘 우리 가운데 이미 온 하느님 나라를 충실히 살아내는 깨어있는 기다림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신중하되 천천히 하라. 빨리 뛰는 것이야말로 넘어지는 것이다(셰익스피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붉은 단풍도 나무를 중심으로 뜨겁게 타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 안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선포하십니다. 지금 살아내야 할 사랑의 현실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이미 우리 안에, 이미 우리 가운데에 존재하는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느님 나라이시며, 그분과 함께 사는 우리의 삶이 그 나라의 현실입니다. 진정한 혁명은 내면에서 시작됩니다.

하느님 나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하느님의 사랑을 살아내는 일상이 바로 하느님의 일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시작된 구원의 현실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삶 속에서 실현됩니다.

하느님 나라는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서 이미 현존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 마음의 중심입니다. 삶과 마음, 관계의 중심에서 체험되는 나라입니다.

이미 우리 가운데 살아 숨 쉬는 은총이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이미 우리 가운데 살아 숨 쉬는 은총을 만나는 오늘 되십시오. 하느님 나라는 지금, 우리의 일상 속에서 체험될 수 있는 뜨거운 마음의 현실입니다.

 

 

 

지혜서 7장 2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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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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