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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6/29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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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도들은 세상에 사는 동안 자신의 피로 교회를 세웠으며, 주님의 잔을 마시고 하느님의 벗이 되었네.

하느님,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축제로 오늘 교회가 거룩한 기쁨을 누리게 하셨으니 교회의 기초를 놓아 준 그들의 가르침을 저희가 모든 일에서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6월 29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6월 2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12,1-11)
    이제야 참으로 알았다. 주님께서 헤로데의 손에서 나를 빼내어 주셨다.

  • 제 2독서
    (2티모 4,6-8.17-18)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 오늘 복음
    (마태 16,13-19)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사도 12,1-11
오늘 제1독서

이제야 참으로 알았다. 주님께서 헤로데의 손에서 나를 빼내어 주셨다.

그 무렵 

1 헤로데 임금이 교회에 속한 몇몇 사람을 해치려고 손을 뻗쳤다. 

2 그는 먼저 요한의 형 야고보를 칼로 쳐 죽이게 하고서, 

3 유다인들이 그 일로 좋아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아들이게 하였다. 때는 무교절 기간이었다. 

4 그는 베드로를 붙잡아 감옥에 가두고 네 명씩 짠 네 개의 경비조에 맡겨 지키게 하였다. 파스카 축제가 끝나면 그를 백성 앞으로 끌어낼 작정이었던 것이다. 

5 그리하여 베드로는 감옥에 갇히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6 헤로데가 베드로를 끌어내려고 하던 그 전날 밤, 베드로는 두 개의 쇠사슬에 묶인 채 두 군사 사이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문 앞에서는 파수병들이 감옥을 지키고 있었다. 

7 그런데 갑자기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더니 감방에 빛이 비치는 것이었다. 천사는 베드로의 옆구리를 두드려 깨우면서, “빨리 일어나라.”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쇠사슬이 떨어져 나갔다. 

8 천사가 베드로에게 “허리띠를 매고 신을 신어라.” 하고 이르니 베드로가 그렇게 하였다. 천사가 또 베드로에게 “겉옷을 입고 나를 따라라.” 하고 말하였다. 

9 베드로는 따라 나가면서도, 천사가 일으키는 그 일이 실제인 줄 모르고 환시를 보는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10 그들이 첫째 초소와 둘째 초소를 지나 성안으로 통하는 쇠문 앞에 다다르자, 문이 앞에서 저절로 열렸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어떤 거리를 따라 내려갔는데, 천사가 갑자기 그에게서 사라져 버렸다. 

11 그제야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야 참으로 알았다. 주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헤로데의 손에서, 유다 백성이 바라던 그 모든 것에서 나를 빼내어 주셨다.”

 

 

 

2티모 4,6-8.17-18
오늘 제2독서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6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7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17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 

18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마태 16,13-19
오늘 복음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6월 29일
엔버트 코물 칸 신부

 

✚ 성 베드로 성 바오로 대축일 소개 00:06

✚ 미사시작 01:47

✚ 강론시작 18:43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너에게 나는 누구냐?

예수님과 함께 오른 타보르산에서도(루카 9,32 참조), 겟세마니 동산에서도(마르 14,37 참조) 잠을 자던 베드로는, 오늘 제1독서에서 이제 감옥에서도 예고된 처형 전날 밤 군인 열여섯 명의 감시를 받으며 두 개의 쇠사슬에 묶인 채 평온하게 잠을 잡니다.

고난받는 가운데서도 주님만을 믿고 맡기는 모습이기에 이 마지막 잠은 감탄할 만합니다. 강한 빛과 함께 나타난 천사의 지시와 이끄심으로 감옥에서 풀려난 베드로는, 주님의 현존과 보호를 극적으로 체험합니다.

한편 제2독서에서 바오로는 삶의 끝에 이르러 자신의 지난 삶을 스스로 평가하고 종합하는데, 이는 그의 고난에 대한 신학적 해석에 해당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맡기시기에 앞서 당신의 정체성에 대한 그의 인식을 확인하십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마태 16,16)를 확고하게 인식하고 긍정하는 것은 우리 신앙의 핵심이자 기도의 토대입니다. 베드로는 네 복음서 모두에서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처음 고백한 인물로 등장합니다. 

오늘 기념하는 두 사도를 주춧돌로 하여 세워진 교회는 두 사도의 유산을 이어받으며, 로마의 주교인 교황이 베드로의 수위권을 계승합니다. 베드로와 바오로와 함께 교회를 세우도록 부름받은 우리도 예수님의 물음에 저마다 응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너에게 나는 누구냐?’ 그리고 스스로 물어봅시다.

‘나는 예수님께 어떤 존재인가? 나는 달릴 길을 꾸준히 달리고 있는가? 주님께 의로움의 화관을 기대하는가?’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주께서 하신 모든 일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전에도 말씀드린 바 있듯이 오늘 이 말씀은 신학자들 가운데서 특히 성서 신학자들 가운데서 오랜 논란거리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 리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말씀은 마태오복음에만 나오는 것이고, 주님은 아버지의 나라를 세우려고 하신 분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교회는 주님께서 친히 당신 교회를 세우셨고, 사도들을 기초와 도구로 삼아 세우셨다고 그중에서도 베드로와 바오로가 중심 역할을 했다고 얘기하는 것이 오늘 축일입니다. 주님께서 당신 교회를 세우시는 데 베드로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 시작은 사도들을 주님 중심으로 다시 모은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사도들을 주님 중심으로 다시 모았다고 한 것은 제자들이 주님을 배반하고 도망치고 흩어졌다는 말이고 그런 제자들을 베드로가 다시 모았다는 말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렇긴 하지만 베드로만 배반하지 않고 있다가 다시 모은 것이 아닙니다.

실은 베드로도 배반했고 자긴 절대로 배반하지 않겠다고 장담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제자들보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배반했던 위인이 베드로입니다. 그런데 실은 그랬기에 주님께서 베드로를 반석 삼아서 당신 교회를 세웠다는 말씀이 사실이고 진실인 겁니다. 주님께서 다시 부르시지 않았다면 그대로 끝났을 텐데 주님께서 배반한 베드로를 다시 부르신 것입니다.

그 과정을 우리는 압니다. 베드로와 제자들 모두 절망하고 예루살렘을 떠나서 갈릴래아로 가고 거기서 고기 잡는 일을 다시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갈릴래아로 가라는 주님 말씀에 따라 간 것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때 성소를 포기하고 옛날 일로 돌아간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날따라 옛날 그렇게 잘 잡히던 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다가 주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치니까 153 마리나 잡히는 기적이 일어나고, 주님은 숯불에 고기를 구워 제자들에게 주는데 제 생각에 이 숯불이 꺼져있던 제자들의 마음에 다시 불을 붙입니다. 아마 그래서 베드로와 제자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갔을 것이고, 거기서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실제로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바오로가 교회설립의 일꾼이 된 것은 더 극적이고 적극적인 주님의 손길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을 박해하고 흩어지게 함으로써 주님 교회를 파괴하고자 한 파괴자 바오로를 주님께서 선포자로 만드셨지요. 제자들을 흩어지게 한 것이 결과적으로는 퍼져나가게 한 것이고, 안티오키아를 시작으로 이교 지역에서도 그리스도교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베드로는 제자들을 모으는 구심점이 되었고, 바오로는 퍼트리고 퍼져나가게 한 원동력이 되었는데, 이렇게 된 것은 주님께서 이 둘을 다 그렇게 되게 하신 결과입니다. 또 이렇게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은 아버지의 나라를 세우려고 하셨고, 베드로와 바오로는 주님의 교회를 세우려고 한 것인데 이렇게 세워진 주님의 교회는 이 세상에 건설된 하느님 나라이자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하느님 백성들의 중심이요 모임입니다. 어쨌거나 하느님께서 하신 베드로와 바오로를 도구 삼아 하신 놀랍고도 신기한 이 모든 일들을 보며 하느님을 찬미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주님께서는 하늘나라의 열쇠를 하늘에 두지 않으셨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이 두 분은 예수님께서 특별한 직무를 맡기신 으뜸 사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베드로는 ‘교회의 주춧돌’로 삼으셨고, 바오로는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주님께서 감옥에 갇혀있는 베드로를 빼내주시고 보호해주시며, <제2독서>에서는 주님께서 바오로를 사자의 굴에서 구출해주시고 굳세게 해 주십니다.

<복음>에서는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서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베드로에게 부여되는 권한을 통해서는 ‘교회의 신비’를 드러내줍니다.

먼저,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이렇습니다.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베드로의 이 신앙고백으로 ‘그리스도의 신비’가 드러나게 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예언자들이 보증해 왔던 메시아로서의 ‘그리스도’인 것만이 아니라, 성부와 절대적이고 유일한 관계를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신비입니다. 그리고 이 신비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것을 베드로에게 알려주셨습니다.”(마태 16,17). 바로 이 신앙의 반석 위에 교회가 세워집니다. 곧 교회는 “하느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근거하여 세워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 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이는 그리스도께서 “반석 위에” 직접 세우신 이 교회가 이 세상 끝 날까지 지탱해 나갈 것임을 말해줍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9) 

여기에 또 하나의 놀라운 신비가 있으니, 그것은 베드로에게 부여된 권한을 통해 드러난 ‘교회의 신비’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특별한 권한이 그에게 부여되었다는 사실을 넘어, 그가 행한 것을 “하늘에서” 그대로 인정해 준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곧 “매고 푸는” 권한을 하늘에서 보증하고 인정해 준다는 이 어마어마한 사실에 있습니다. 이토록, 베드로 안에서 사람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는 ‘하늘’이 활동하게 된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제 우리 모두가 용서를 하면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하늘’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벌어지고, 우리 안에서 ‘하늘’이 열리게 됩니다. 곧 내 안에 하느님 나라가 열리는 일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서는 하늘나라의 열쇠를 하늘에 두지 않으셨습니다. 땅에 있는 저희에게 주시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게 하셨습니다. 곧 형제를 받아들임이 당신을 받아들임이라 하시고, 형제와의 사랑을 당신 나라를 여는 ‘열쇠’로 주셨습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16,19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주님!
당신께서는 
하늘나라의 열쇠를 
땅에 있는 
저희에게 주시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게 하셨습니다.

형제를 받아들임이 
당신을 받아들임이라 하시고
형제와 사랑을 
당신 나라를 여는 
열쇠로 주셨습니다. 

하오니, 주님!
묶인 것,
막힌 것을 풀고 
이 땅에서 당신의 나라를 
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열쇠를 받은 사람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교회의 두 기둥인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를 기념하며, 교회의 본질에 대해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16세기, 마르틴 루터는 교회를 향해 중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는 교회가 과연 하느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받았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의 결론은 ‘아니다’였습니다. 그는 교회가 모든 권한을 받은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며, 그 결과 고해성사의 사죄권을 부정하고, 미사에서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는 성체성사의 신비를 포기했습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받지 못했다고 믿는 이가 결국 어떤 것들을 ‘포기’하고 ‘멈추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모든 것’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은 그것이 바로 ‘성령’이라고 증언합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어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요한 3,34-35)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심으로써, 바로 이 ‘모든 것’을 교회에 맡기셨습니다. ‘모든 것을 받았다’는 이 믿음이 있을 때와 없을 때,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운명은 극명하게 갈라집니다. ‘모든 것을 받았다’고 믿지 못할 때, 우리는 멈추어 서거나 길을 잃게 됩니다. 앞서 말한 루터처럼 말입니다. 불멸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영혼은 누구보다 뜨거웠고, 그의 붓은 하느님의 창조 세계를 경이롭게 담아냈습니다. 그에게는 분명 세상을 감동시킬 능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에게 인정이라는 열쇠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부족함과 세상의 냉대를 토로했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모든 것을 받았다’는 믿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 믿음의 부재는 창작의 기쁨, 즉 그림 그리는 ‘맛’을 잃게 만들었고, 결국 자신의 가슴에 총을 겨누는 비극으로 치달았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모든 것을 받았다는 믿음이 없었기에 스스로 멈춰버린 것입니다.

반면, ‘모든 것을 받았다’고 믿는 사람은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지휘자 장한나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녀는 11살에 20세기 첼로의 황제 로스트로포비치는 그녀에게 “내가 너에게 음악의 열쇠를 넘겨준다.”라고 말했습니다. 스승은 그녀에게 단지 첼로를 잘 연주하는 기술이 아니라, 음악의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권한’을 주었습니다. 그녀가 받은 것은 첼로에 대한 ‘일부’가 아니라 음악에 대한 ‘모든 것’이었습니다. 이 믿음이 있었기에 그녀는 첼로라는 악기에 멈추지 않았습니다. 첼로의 레퍼토리라는 한정된 세계에 머무르지 않고, 교향곡이라는 광대한 우주의 모든 문을 열기 위해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모든 것을 받았다고 믿었기에, 그녀의 음악적 여정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성 바오로 사도의 삶은 이 역동성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났지만, 그 권위만으로 독자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명을 확인받고 교회의 질서 안에서 활동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그 뒤 삼 년 만에 나는 케파(베드로)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보름 동안 그와 함께 지냈습니다.” (갈라 1,18) 

그는 교회의 으뜸인 베드로를 만나 친교를 나누었고, 안티오키아에서는 교회 공동체의 기도를 통해 공식적으로 파견받습니다.

“그들이 주님께 예배를 드리며 단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이르셨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부른 바르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라.’ 그래서 그들은 단식하고 기도한 다음 그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내보냈다.” (사도 13,2-3)

모든 것을 받은 교회로부터 파견받는다는 말은, 교회가 그리스도께 모든 권한을 부여받고 파견받은 것과 같은 믿음을 가지게 합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주시는 교회를 통해 파견되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때로는 순종하고 때로는 용감하게 발언하며 단 한 순간도 복음을 향한 전진을 멈추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는 죽음으로만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보화를 문만 열면 나누어줄 수 있게 되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그것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죽음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어느 IT 기업에서 의사소통할 수 있는 AI 로봇 모델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노인을 대상으로 연구했는데, 그들이 정보에 취약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좋은 정보를 알려주기 위한 취지로 간단한 대화가 가능한 AI 로봇 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곧 큰 난관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AI는 질문해야 답하는데, 어르신이 원하는 대상은 정보를 주는 대상이 아니라 들어주는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기 이야기만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존재를 찾기란 사람 안에서 쉽지 않습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십니다. 하지만 많은 이가 들어주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보다, 대답이 없다면서 아예 없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주님 안에서 위로와 힘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 이야기에만 집중하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주님처럼 듣는 데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게 듣는 데에 집중해야 우리에게 위로와 힘을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마음 깊은 곳에서 들을 수 있게 됩니다. 그 말씀에 힘을 얻으며 지금을 잘 살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을 지냅니다. 성 베드로, 성 바오로 모두 주님의 사도로써 자기 역할에 충실했음을 잘 알고 있지만, 그들이 처음부터 자기 역할에 충실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었고, 바오로는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던 사람이었지요. 그들 모두 자기 이야기에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적인 부족함을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을 제대로 따를 수 없었습니다. 

이런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따르게 됩니다. 베드로는 교회의 반석으로, 바오로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복음 선포에 헌신하게 됩니다. 이로써 교회의 기초를 세우고, 교회가 확장할 수 있도록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마태 16,16)라는 자신의 신앙 고백을 드러냅니다.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정체성을 분명히 밝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 교회가 세워졌고, 바오로의 회심을 통해 교회가 확장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이야기에만 집중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주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의 모습에서 180도 완전히 바뀌는 진정한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세상은 뻔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다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뿐이다 (셜록 홈즈).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삶의 방향을 바꾸어 복음을 향해 힘차게 나아갔던 두 사도의 뜨거운 축일입니다. 두 사도는 삶 전체로 그리스도를 증언하였습니다. 끝까지 주님을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약함과 과거는 하느님께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약한 이들을 통해 위대한 일을 이루십니다.

두 사도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고난과 순교의 길을 받아들였습니다. 베드로는 거꾸로 바오로는 칼날로 순교하였습니다. 성 베드로는 넘어짐과 실패를 딛고 교회의 반석이 되었습니다. 성 바오로는 박해자에서 복음 선포자가 되는 은총을 체험합니다.

두 사도를 통해 충실함과 겸손 회심과 열정은 하나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연약함 속에서도 자라나는 사랑입니다. 불타는 열정에서 길어올린 완전한 헌신을 보여줍니다. 모두 하느님 앞에 선 인간의 진실함입니다.

실수해도 다시 일어서는 희망과 회심으로 새로운 삶을 사는 용기를 배우는 은총의 대축일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성 베드로처럼 사랑으로 다시 일어서고 성 바오로처럼 복음으로 다시 새로워지는 우리의 삶입니다.

 

 

 

 마태오복음 16장 19절
오늘 성경 말씀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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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5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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