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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6/08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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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영은 온 세상을 채우시고 만물을 살리시며 온갖 말을 다 아시네. 알렐루야.

하느님, 오늘 이 축제의 신비로 모든 민족들과 나라에 세우신 하느님의 온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니 성령의 선물을 온 세상에 내려 주시고 복음이 처음 선포될 때 베푸신 그 큰 은혜를 이제 믿는 이들의 마음속에 가득 채워 주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6월 8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6월 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령 강림 대축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6월 8일 성령 강림 대축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2,1-11)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 제 2독서
    (1코린 12,3ㄷ-7.12-13)
    우리는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 오늘 복음
    (요한 20,19-23)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사도 2,1-11
오늘 제1독서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오순절이 되었을 때 사도들은 

1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2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3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4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5 그때에 예루살렘에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온 독실한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6 그 말소리가 나자 무리를 지어 몰려왔다. 그리고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지방 말로 듣고 어리둥절해하였다. 

7 그들은 놀라워하고 신기하게 여기며 말하였다. “지금 말하고 있는 저들은 모두 갈릴래아 사람들이 아닌가? 

8 그런데 우리가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 

9 파르티아 사람, 메디아 사람, 엘람 사람, 또 메소포타미아와 유다와 카파도키아와 폰토스와 아시아 주민, 

10 프리기아와 팜필리아와 이집트 주민, 키레네 부근 리비아의 여러 지방 주민, 여기에 머무르는 로마인, 

11 유다인과 유다교로 개종한 이들, 그리고 크레타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인 우리가 저들이 하느님의 위업을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언어로 듣고 있지 않는가?”

 

 

 

1코린 12,3ㄷ-7.12-13
오늘 제2독서

우리는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형제 여러분, 

3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 

4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5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6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7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요한 20,19-23
오늘 복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6월 8일
최영섭 후고 신부

 

✚ 성령 강림 대축일 소개 00:06

✚ 미사시작 01:13

✚ 강론시작 17:25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성령의 선물로 완성되는 파스카 신비

창조 때 물 위를 감돌던 하느님의 영(창세 1,2 참조), 첫 인간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신 영(2,7 참조), 그 영께서 이제 오순절에 사도들 위에 오시어 새 시대를, 교회의 시대를 여십니다. 바벨탑 아래서 사람들이 ‘흩어진’ 것도, 그들 사이의 상호 불통도 온 땅의 말이 뒤섞이며 생긴(11,9 참조)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한자리에”(사도 2,1) 모인 사도들의 일치와, 서로 다른 언어를 저마다 알아듣는 소통으로 극복됩니다. 공동체의 일치와 결속은 성령의 선물을 받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교회 공동체는 인간들의 생각과 계획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에서 비롯하며 성령께서 그 원동력이 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두 차례에 걸쳐 성령을 보내 주십니다. 첫 번째는 오늘 복음이 전하듯이 지상에서, 두 번째는 제2독서가 전하듯이 승천하신 다음 하늘에서 보내 주십니다. 예수님의 파스카 신비는 성령의 선물로 완성됩니다.  

주님께서는 두려움 때문에 방문도 마음의 문도 닫아 놓고 있던 사도들에게 찾아오시어 “숨을 불어넣으[시]며”(요한 20,22) 성령을 주십니다. 부활하신 분께서는 제자들에게 첫 선물로 ‘평화’를 주시고, 죄를 ‘용서’하도록 당신의 권한을 위임하시며, 사명을 주시어 ‘파견’하십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은, 언어와 문화가 서로 다른 모든 이가 하느님의 집에서 한 가족이 되어 삼위일체의 친교를 이루며 살아가도록 초대받는 날입니다. 주님께서는 교회의 공동선을 위하여 여러 지체에게 성령의 다양한 열매들을 주십니다. 성령의 힘으로 참된 소통과 일치를 이루려면 우리는 모든 거리와 장벽을 허물고 분열을 극복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성령의 열매들

오늘 주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숨을 불어넣으시며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성령을 사도들이 받아들였는지 아닌지는 복음에 나와 있지 않고, 사도행전에서는 오순절이 되었을 때 받은 것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부활 대축일 다음 50일이 되는 오늘 성령 대축일을 지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성령을 주셨어도 제자들이 바로 받은 것이 아니고 50일이 지나서야 성령을 받아들였다는 말씀인데 아마 우리도 그럴 것입니다.  

주님께서 성령을 주심과 우리의 받아들임 사이가 50일인데 제 생각에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령의 출입구인 입과 코를 여는 시간입니다. 이는 우리가 기도하지만 성령의 기도를 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시작하여 주로 주님께 달라는 기도를 하고 간혹 주님의 말씀을 듣는 기도는 해도 성령의 기도를 하지는 못했는데 드디어 말씀의 기도에서 성령의 기도를 하게 된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아오스딩 성인은 기도에 대한 정의를 두 가지로 하였습니다.  

“기도란 하느님과의 대화다.” 

“기도란 영혼의 호흡이다.” 

하느님과의 대화인 기도는 하느님과 말씀을 주고받는 것인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달라는 말로 곧 청원 기도로 기도를 시작한 우리가 조금 발전하면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말씀을 경청하기 시작하고, 더 발전하면 영혼의 호흡인 성령의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영혼의 호흡이란 우리의 영혼이 주님의 숨 곧 성령을 숨 쉬는 것인데 이렇게 우리의 영혼이 성령을 숨 쉴 때 우리는 어떤 열매를 맺을까요? 첫째로 우리는 목숨을 유지하게 됩니다. 우리말에서 목숨은 목에 숨이 들락날락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목에 숨이 들락날락하지 않으면 목숨이 끊어지듯 우리의 영혼이 주님의 숨인 성령을 숨 쉬지 않으면 죽게 됩니다. 둘째로 우리는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주님께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다음 바로 용서를 말씀하시는데 성령을 받으면 용서할 수 있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을 받아 충만하게 되면 다 용서할 수 있습니다. 전에 도무지 용서할 수 없던 것도 다 용서할 수 있게 되는데 그것은 성령께서 온갖 충만함을 주는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성령을 받으면 사랑으로 충만해지는 것은 당연하고, 사랑으로 충만할 때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도 당연합니다.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기에 원수가 되고 그런 그를 용서할 수 없었는데 성령 충만, 사랑 충만으로 행복해진 내가 이젠 용서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셋째로 우리는 평화롭게 됩니다. 사실 성령 충만으로 용서할 수 있게 된 우리가 평화롭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용서란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허무는 것이기에 대화가 통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대화하던 성령의 입으로 이웃과 대화하게 되고, 오늘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민족이 서로 대화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밖에도 성령의 열매는 많지만 오늘은 이 정도로 나눔을 마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를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오늘은 성령강림 대축일입니다. 성령께서는 오늘도 갖가지 모습으로 저희에게 오시고 함께 현존하시며 동행하시지만, 특별히 오늘 <말씀 전례>에서는 성령께서 오시는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줍니다.

<제1독서>에서는 ‘놀라운 모습’, 곧 하늘에서 세찬 바람의 소리와 불과 혀의 모양으로 내려오십니다. 그리고 <복음>에서는 ‘고요한 모습’, 곧 닫혀 진 문을 뚫고 아무런 소리도 없이 부드러운 숨결로 들어오십니다. 이 두 가지 모두 하늘 문을 열거나, 땅의 문을 열거나 모두 ‘닫힌 문’을 열면서 벌어집니다. 곧 성령의 활동은 ‘문을 여는 일’을 통해 드러납니다. 성령께서는 하늘을 가르고, 닫혀 진 문을 부수고, 가려진 장막의 휘장을 찢고, 죽음에 갇힌 무덤을 풀며, 우리의 굳은 마음의 문을 여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이 문을 열고 땅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묘한 것은 하늘은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 열리고, 닫힌 문은 마음에서 열린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하늘이 열리는 자리는 바로 우리네 삶의 자리입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계시고, 그러기에 다른 먼 곳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로 그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성령께서는 바로 지금, 여기 우리 가운데서 활동하신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성령이 베풀어졌고, 우리는 이미 그분 신비체의 몸입니다.

<제2독서>에서는 이를 잘 말해줍니다. ‘신비체’는 지체로 이루어진 ‘한 몸’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몸은 바로 성령에 의해 지탱되고 존속됩니다. 그 지체를 서로 결합시키고 하나로 묶어주는 힘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발현하시어 “평화”를 주시는 장면과 성령으로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시는 장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로써 하느님의 ‘협력자’이시요 우리의 ‘협력자’이신 ‘성령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새 백성이 탄생되고, 새 시대가 열리고, 그리스도 몸의 신비체인 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것은 ‘닫혀 진 문’을 열고 들어 와 시작됩니다.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닫혀 진 문’ 뒤에 숨어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문을 잠가 놓고 있을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닫혀 진 문’을 뚫고 들어오시어, “평화의 인사”를 나누십니다. 팔레스티나에서 보통으로 표현하던 이 인사는 이제 인간의 구원을 약속하시는 인사가 됩니다. 이제 이 ‘평화’는 주님의 축복이요, 선물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재가 방황이요 두려움이라면, ‘예수님의 현존’이 곧 기쁨이요 평화입니다. 예수님의 현존으로 이제 공포는 기쁨으로 바뀌고, 혼란스러운 무질서는 질서를 찾습니다. 예수님께서 공포와 두려움에 ‘닫혀 진 마음의 문’을 열고서, ‘성령’의 숨결을 불어넣으셨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 ‘평화의 전령’으로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요한 20,21-22)

이제 제자들은 평화의 도구, 구원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제자께 주님이 주신 이 평화를 서로 나누어야 할 뿐만 아니라, 세상 안에 이 평화를 건설해야 하는 사명을 짊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평화로운 사람’이 되기보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그런데 이 ‘평화’는 우리의 힘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평화’는 우리가 이루는 평화가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이루는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협조자 성령’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라고 하실 때, ‘숨을 불어넣으셨다’는 말의 원어의 번역은 ‘숨을 건네주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당신의 생명을 건네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모두 용서하시고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건네주시며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를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23) 

“성령을 받아라.”는 말씀은 너희는 ‘이미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을 밝혀주며, 그러니 ‘너희도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용서’를 통해, 평화를 이루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용서’할 때, ‘평화’는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먼저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먼저 당신의 숨을 불어넣으시어 새롭게 하십니다. 당신의 생명으로 우리에게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우리가 용서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렇게 평화를 주시고, 우리가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하십니다. 바로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현존하시고, 우리 가운데서 활동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 감격스런 성령의 활동에 자신을 승복하고, 하느님의 현존에 푹 젖는 성령강림절이 되길 바랍니다. 바로 오늘이 ‘용서와 평화의 축제’가 되길 바랍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20,22
성령을 받아라.

 

성령이시여! 
제 안에 흐르소서. 

흐르는 골골에 찌든 때를 벗기시고 
반역과 죄를 몰아내소서. 

아픔과 상처 어루만지시고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소서. 

멍들고 굳어진 마음 문지르시고 
접히고 구겨진 마음 펼치소서. 

막히고 닫힌 마음 열치시어  
당신 숨결 흐르게 하소서. 

새로워지고, 
새롭게 살게 하소서.  

용서받았으니, 
용서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성령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오늘 묵상할 복음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23)라고 하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치 베드로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시며 이 땅에서 매고 푸는 권한을 주셨듯이, 이제는 성령을 주시며 사도들에게 매고 푸는 권한을 주십니다. 이 성령 강림을 통한 죄사함의 권한이 교회에 맡기심을 믿지 못하면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도 부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항상 “사람이 어떻게 죄를 용서할 수 있느냐?”라고 말하는 이들이 존재합니다(마르 2,7; 루카 5,21).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하시면 자신도 할 수 있다고 믿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야 성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아이가 집의 귀중한 물건을 깨서 부모에게 용서받았다고 해봅시다. 그 아이는 또한 형제나 나중에 낳게 될 자기 아이에 대한 용서의 의무가 생기게 됩니다. 예수님은 일만 탈렌트의 비유로 이를 잘 알려주셨습니다.

왜 용서받으면 용서해야 하는 ‘의무’가 생기는 것일까요? 그것이 사랑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세례 때 성령의 상징은 ‘흐르는 물’입니다. 갈릴레아 호수는 물이 흐릅니다. 그래서 생명이 넘칩니다. 반면 사해는 물이 흐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죽은 바다가 되었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요르단강 끝부분, 곧 갈릴레아에서 물이 흘러 사해로 들어가기 직전의 위치에서 이뤄졌습니다. 죽은 물로는 세례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태아가 죽은 물 안에서 자랄 수는 없습니다. 물도 죽은 물이 있고 산 물이 있는데, 살아있는 물은 흐르는 물이어야 합니다. 성령도 흐르는 물처럼 교회에 부어졌습니다. 그러면 교회도 용서해야 하는 의무를 지니는 것입니다. 용서해야 하는데 용서할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물은 마른 땅, 낮은 땅으로 흐릅니다. 만약 세상에 죄가 없었다면 그것을 이기는 힘을 주실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래서 죄 때문에 성령께서 오신 것이고 이 때문에 부활 성야 때는 아담과 하와의 죄를 ‘복된 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코리텐 붐을 생각해봅시다. 그녀는 자신이 용서하지 못할 사람과 마주 섰습니다.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때 그를 용서하지 않으면 자신도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은총이 내린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이렇게 써 있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공관복음은 공통으로 네 명이 중풍 병자를 들것에 옮겨와 예수님으로부터 죄의 용서와 병의 치유를 받는 이야기를 전합니다(마태 9,1-8; 마르 2,1-12; 루카 5,17-26). 이 치유 사화는 ‘죄의 용서’와 ‘병의 치유’가 별개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같은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보시며,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말씀하실 때, 율법학자들은 ‘사람이 어떻게 죄를 용서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에게 죄를 용서할 권한이 있음을 보여주겠다고 하시며 중풍 병자의 병을 고쳐주십니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이 일을 보고 군중은 두려워하며,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마태 9,8)라고 말하며 그리스도 한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 곧 교회에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주어졌음을 암시합니다.

예수님은 교회에 성령을 주셨습니다. 조금 주시는 것이 아니라 ‘전부’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요한 3,25)라고 하시는 것처럼, 사랑하면 ‘다’ 주어야 합니다. 성령은 한 분의 하느님으로서 나뉘실 수 없습니다. 교회는 살아있는 호수로서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당신의 전부인 ‘피(성령)’를 통한 죄 사함의 권한을 온전히 행사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인한 말씀의 선포와 성사의 거행이 멈춘다면 더는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마치 계단식 논처럼 창조자는 모든 땅에 물이 흘러가기를 원하십니다. 부모가 한 자녀를 용서하면 그 자녀도 동생을 용서하기를 원합니다. 모두의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위로부터 흐르는 물입니다. 그러니 죄의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는 교회라면 이미 죽은 교회입니다. 어떤 임금이 자기만 물을 가지려고 하는 이에게 생수를 흘려보내겠습니까? 교회 시작부터 분명히 죄를 용서하는 권한으로 파견한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용서의 통로입니다. 흐르지 않으면 은총이 멈추어 죽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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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연 마태오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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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성령을 받아라.

성령께서 우리에게 내려오십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내려오셔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도와주시고 가르쳐주시고 힘을 주십니다. 가장 좋으신 성령은 언제나 생명 그 자체입니다. 성령은 부활 이후에 제자들에게 주어집니다.

새 공동체의 시작을 기쁘게 알립니다. 성령 강림은 철저히 공동체적 사건입니다. 각 사람에게 임하지만 그 즉시 공동체로 연결됩니다. 우리의 두려움이 담대함으로 바뀝니다. 복음의 일꾼으로 파견됩니다.

우리 안에 머물지 않고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파견의 힘찬 힘으로 드러납니다. 지속적인 삶의 방식으로 매일 새롭고 충만하게 사랑의 삶을 살게 합니다. 성령은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사시는 방식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공동체를 위한 도구이고 성령의 열매는 우리 인격의 변화로 드러납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우리를 파견하십니다. 성령은 지식이 아닌 참된 경험으로 바꾸어 줍니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인격적인 인도자이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과 지금 여기에서 살아 있는 관계를 맺게 됩니다. 성령은 오늘도 우리와 대화하시는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언제나 성령과 함께 하시는 우리의 삶이길 기도드립니다. 성령을 받으십시오.

 

 

 

요한복음 20장 22절
오늘 성경 말씀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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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5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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