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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5/22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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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찬양하세, 그지없이 높으신 분.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굳셈. 나를 구원하셨네. 알렐루야.

하느님, 거룩한 은총으로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불행한 이들을 행복하게 하시니 몸소 저희를 믿음으로 의롭게 하시고 한결같이 하느님을 섬길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5월 22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5월 2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제5주간 목요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5월 22일 부활 제5주간 목요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15,7-21)
    내 판단으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 오늘 복음
    (요한 15,9-11)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사도 15,7-21
오늘 제1독서

내 판단으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그 무렵 

7 오랜 논란 끝에 베드로가 일어나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다른 민족들도 내 입을 통하여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하느님께서 일찍이 여러분 가운데에서 나를 뽑으신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8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시어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9 그리고 그들의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화하시어,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으셨습니다. 

10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형제들의 목에 씌워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11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12 그러자 온 회중이 잠잠해졌다. 그리고 바르나바와 바오로가 하느님께서 자기들을 통하여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표징과 이적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13 그들이 말을 마치자 야고보가 이렇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4 하느님께서 처음에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당신의 이름을 위한 백성을 모으시려고 어떻게 배려하셨는지, 시몬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15 이는 예언자들의 말과도 일치하는데,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6 ‘그 뒤에 나는 돌아와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다시 지으리라. 그곳의 허물어진 것들을 다시 지어 그 초막을 바로 세우리라. 

17 그리하여 나머지 다른 사람들도, 내 이름으로 불리는 다른 모든 민족들도 주님을 찾게 되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하고 이 일들을 실행하니 

18 예로부터 알려진 일들이다.’ 

19 그러므로 내 판단으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고, 

20 다만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우상에게 바쳐 더러워진 음식과 불륜과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멀리하라고 해야 합니다. 

21 사실 예로부터 각 고을에는,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모세의 율법을 봉독하며 선포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요한 15,9-11
오늘 복음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5월 22일
김욱 다윗 신부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8:02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동희 모세 신부

겉절이가 아니라 김장김치가 되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 하고 말씀하십니다.

곧 ‘나에게 사랑받아라, 내 사랑을 받아들여라, 나에게서 사랑을 배우라.’라는 말씀으로, 나뭇가지가 나무에서 빨아 올려야 할 수액이 바로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으로 우리는 주님 안에 머무른다는 말의 뜻을 좀 더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에 머물고, 누군가를 받아들이며, 나아가 배움으로써 자신의 깊이와 넓이를 키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기 전에 우리는 뛰쳐나가고 싶어 합니다. 제 능력과 자기의 옳음을 어서 빨리 세상에 입증해 보이고 싶은 것이지요.

신학교에서, 그리고 여러 차례의 피정에서 제가 받은 최고의 유혹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묵상하며 무엇인가 조금 배우고 알게 되면 곧바로 그것을 가르치거나 강론으로 전하려는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저는 쉼 없이 설레하며 우쭐거렸습니다. 피정에서 큰 체험이나 깨달음이 있으면 그 뒤의 피정 시간을 망치기 일쑤였습니다. 당장 뛰쳐나가 저에게 주어진 깨달음과 은총이 얼마나 큰지, 그와 더불어 그런 은총을 받은 저의 대단함을 은근히 떠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가요? 기도하고 묵상하며 주님 사랑 안에 머무르기가 쉬운가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님 사랑 안에 충분히 머무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 사랑의 겉절이가 아니라 김장김치가 되어야 합니다. 산뜻하고 풋풋한 겉절이도 좋지만 김장김치의 깊은 맛은 따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삭정이도 쭉정이도 아니되도록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 사랑 안에 머물라는 주님 말씀에 대한 오해와 왜곡이 우리 가운데 상당합니다. 당신 사랑 안에 머물라는 주님 말씀은 어떤 뜻입니까?  

당신 사랑을 떠나지 말라는 뜻일까요? 다른 사랑을 찾아가지 말라는 뜻일까요? 다른 사랑은 하지 말라는 뜻일까요?  

이 중에서 주님 사랑에서 떠나 다른 사랑을 찾아가지 말라는, 곧 사랑에 있어서 변심하지 말라는 뜻은 맞고, 다른 사랑은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열심하다는 신앙인 중에서도 주님 사랑 안에만 머물며 이웃 사랑을 위해서는 조금도 꼼짝하지 않는 곧 하느님 사랑에 안주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이것도 주님을 사랑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고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만 당신 사랑 안에 머물라는 주님 말씀의 진의를 오해하고 왜곡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당신 사랑 안에 머물라는 말씀은 당신 사랑 안에만 머물라는 말이 아닙니다. 무엇을 하든 당신 사랑 안에 머물고, 누구와 있든 당신 사랑 안에 머물며, 어떤 경우에도 당신 사랑 안에 머물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과 주님 사랑을 떠나 어디 갈 수 있다고 생각지 말라는 것이고,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대립하거나 양립하는 것으로 생각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모의 사랑을 떠나 애인에게 가도, 우리는 여전히 부모의 사랑 안에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부모를 잊어도 부모는 우리를 잊지 않고, 우리는 부모를 떠났다고 생각해도 부모는 그렇게 생각지 않기에 우리는 여전히 부모의 생각 안에 있고 사랑 안에 있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사랑을 하든 주님 사랑을 떠나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 것이며 그 사랑 안에서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어제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러기에 아무 보람도 기쁨도 충만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도 사랑 안에 머물라고 말씀하신 다음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주님 사랑 안에 머물지 않아 삭정이가 되듯이 우리 사랑도 주님 사랑 안에 머물지 않으면 삭정이 사랑이 되어 애써 사랑하고도 우리 사랑의 열매는 쭉정이가 되고 사랑의 기쁨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그 누구에게도 빼앗겨지지 않는 기쁨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요한 15,9)

이는 우리가 이미 사랑을 받았다는 선포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기원이 아버지께 있다는 선포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분명, ‘이미 사랑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아버지께로부터 왔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풀어진 아버지의 사랑으로부터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결코 떼어놓을 수는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그 사랑을 받을만한 아무런 자격이 없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 호의와 자애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곧 선사된 사랑이 베풀어진 것입니다.  

자신이 ‘선사받은 존재임을 깨닫는 일’, 모든 것이 베풀어진 사랑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 이처럼 아름다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 사실이 오늘 우리를 경탄과 탄성, 경배와 예배, 음미와 감사, 찬미와 찬양의 삶을 불러들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성자께서 모든 것을 아버지께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찬미찬양의 삶을 사셨듯이 말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 사랑 안에 머무르기를 초대하십니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

여기에는 ‘먼저’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일이 전제됩니다. 곧 선사되는 당신의 사랑을 ‘먼저’ 받아들여 그 안에 머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당신의 사랑이 우리 자신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먼저’ 자신을 허용하고 승복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다른 사랑이 아니라, 선사받은 바로 그 사랑 안에 머물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랑 안에 머무는 방법도 함께 가르쳐주십니다.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요한 15,10) 

이미 당신께 선사받은 그 사랑을 지키는 것이 곧 당신 사랑 안에 머무는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곧 그 어떤 사랑이 아니라, 선사받은 그 사랑을 간직하고 준수하는 것입니다. 이는 당신의 사랑은 말이나 생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랑하기를 실행할 때 그 실행 안에 머문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 사랑을 실행하는 것이 ‘새 계명’으로 선포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 15,12) 

그리고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1) 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무르게 되면 당신의 기쁨이 우리 안에 들고 우리 또한 기쁨으로 차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그 기쁨은 뒤에서 요한이 말한 대로, “그 누구에게도 빼앗겨지지 않는 기쁨”(요한 16,22)입니다. 그러기에, 그 기쁨은 예수님께로부터 선사받은 신적인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쁨은 결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사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의 만족, 나의 성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의 실현으로부터 오는 까닭입니다. 오늘 하루 그 기쁨이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15,11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
제 안에는 
당신의 숨결이 흐릅니다.

제 안에 새겨진 
당신의 사랑입니다. 

제 안에 굴을 파고들어 와 
빈 무덤으로 모습을 숨긴 
그지없이 충만한 사랑입니다.

결코 빼앗길 수도, 
빼앗겨지지도 않는 기쁨입니다. 

주님! 당신의 기쁨의 숨결이
온 세상에 퍼지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자녀가 착해지거나 악해지게 만드는 것은 엄마의 '지금' 감정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평화에 이어 기쁨도 주고 가신다고 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기쁘고 평화롭게 하려고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당신 평화와 당신 기쁨을 주고 가시는 것입니다. 우선 왜 자녀인 우리들이 기쁘고 평화로워야 하는지 다시 돌아보겠습니다. 불안과 우울은 나뿐인 사람, 나쁜 놈, 곧 모기로 만들어 부모가 사는 세상에서 살 자격을 잃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불안하고 산란하고 두려운 상태는 우리를 극도로 이기적인 존재로 만듭니다. 타인의 필요를 돌아보기보다는 오직 자신의 결핍을 채우는 데만 급급해집니다. 마치 여름밤, 단잠을 깨우며 제 배만 채우려는 모기처럼, 타인의 고통이나 희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만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영화 ‘월 스트리트’에서 ‘탐욕은 선하다’고 외치던 고든 게코의 공허한 외침이나, 영화 ‘조커’에서 사회로부터 외면당한 한 인간이 내면의 평화를 잃고 극단적인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 또는 역사 속 수많은 폭군들이 자신의 불안과 결핍을 타인에 대한 잔혹함으로 드러냈던 예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그들은 물질과 권력을 탐했지만, 영혼은 더욱 피폐해져 갔습니다. 바이킹의 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머니의 감정이 왜 꼭 자녀에게 전달될 수밖에 없느냐?’인 것이고 왜 ‘기쁘거나 평화롭게 해 주지 않고 당신의 그러한 감정을 먼저 가지고 전해주어야만 하는가?’입니다.

영화 ‘마더’는 지적 장애가 있는 아들을 둔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속에서 어머니는 아들이 살인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과 불안에 휩싸입니다. 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동분서주하는 어머니의 얼굴은 항상 어둡고 초조합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불안과 초조함도 점점 커집니다.

도준이 그렇게 된 이유는, 다섯 살 때 힘들어서 박카스에 농약을 타서 도준을 죽이고 자신도 죽이려고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도준의 내면에는 '언제든지 엄마가 나를 죽일 수 있다'는 깊은 상처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도준이 어머니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에서 불안정한 애착을 형성하게 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감정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신의 행동이 어머니의 기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끊임없이 신경 쓰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러한 정서적 불안정성은 도준이 사회적 상황에서 적절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게 만들고, 결국 사건에 연루되는 계기가 됩니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경찰서 면회실에서의 장면입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면회를 가는데, 유리벽 너머 아들을 보는 어머니의 눈빛이 두렵고 초조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를 바라보는 아들 역시 점점 불안해지며, 자신도 모르게 죄책감과 두려움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어머니의 초조함과 불안이 그대로 아들에게 전이되는 장면입니다.

자녀는 왜 어머니의 감정을 그대로 물려받아야만 할까요? 단순합니다.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은 누군가의 보호와 도움 없이는 생존과 존재가 사라지는 운명을 가졌습니다. 엄마의 감정은 어디서 생길까요? 바로 자신을 보호해 줄 남편과의 관계에서 생깁니다. 도준의 어머니는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남편과의 관계가 안 좋으면 그 감정이 그대로 자녀에게 전이되고 자녀는 그 감정에 의해 착한 사람도 되고 나쁜 사람되 됩니다. 그래서 자녀는 엄마의 감정에 민감합니다. 엄마의 감정이 평화롭지 않으면 자신은 죽을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예전에 수영 배울 때가 생각납니다. 초보일 때는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는 것도 벅찼지만, 어느 정도 수영에 자신감이 붙으면서 욕심이 생기더군요. 남들보다 더 잘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서점에 가서 수영 관련 서적을 구매하고는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리고 수영장에 가서 읽은 내용을 떠올리며 호기롭게 몸을 움직였습니다. 
 
책의 내용처럼 능숙하게 수영할 수 있었을까요? 상상과 실제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며칠을 계속해서 연습한 뒤에야 조금 비슷해질 수 있었습니다. 글을 통해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또 코치의 말만 듣고서 익힐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도록 땀 흘려 연습해야 가능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주님의 말씀을 듣고 또 본다고 해서 주님을 따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몸으로, 즉 행동으로 실천해야 주님을 제대로 따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하느님 말씀을 전혀 몰랐을까요? 또 전혀 듣지 못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하느님 말씀을 들었고 또 직접 읽으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 ‘위선자’라는 꾸중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전혀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랑 실천을 점검해야 할 때입니다. 혹시 전혀 실천하지 않는 자기의 머리에만 머무는 사랑이 아니었을까요? 
 
주님께서 먼저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단순히 말만 하시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를 진짜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죽음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진짜 사랑하셨기에 당신 목숨까지 우리를 위해 내어놓으셨던 것입니다. 이런 사랑에 우리는 그분을 사랑한다고 응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응답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단순히 말로만 ‘사랑한다’ 하면 될까요? 세상의 관점인 받는 사랑에만 집중하고 있으면 될까요?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주는 사랑’이었고, 또한 ‘행동하는 사랑’이었습니다. 
 
이런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만 주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고, 기쁨을 충만하게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 사랑이 우리 삶을 가득 채울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가정 안에서, 삶의 일터 안에서, 그리고 교회 안에서 그 사랑이 넘쳐날 때,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충만해질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는 오로지 사랑을 함으로써 사랑을 배울 수 있다 (아이리스 머독).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가장 좋으신 하느님과 함께하는 기쁨입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기쁨이 최고의 기쁨입니다. 사랑은 기쁨을 향하고 기쁨은 사랑으로 충만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충만한 기쁨입니다.

맑은 기쁨을 배우고 맑은 사랑을 오늘도 예수님의 삶에서 배웁니다. 오늘이 기쁨의 새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의 관계로 이끄십니다. 기쁨은 일시적이지 않습니다.

기쁨의 항구한 기도이며 기도는 순종의 기쁨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십니다. 기쁨은 소유에 있지 않고 존재 자체에 있습니다. 기쁨은 우리의 것이 아닌 하느님의 것입니다.

하느님의 기쁨은 언제나 우리에게 믿음과 희망을 줍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기쁨이고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것이 기쁨이고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것이 기쁨입니다.

하느님 사랑이 충만한 기쁨입니다. 충만한 기쁨은 바로 오늘이며 오늘이 기쁨의 선물입니다. 그 선물을 기쁘게 받으십시오. 시들지 않는 생명의 선물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1절
오늘 성경 말씀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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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5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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