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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11/15 (금)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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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제 기도 당신 앞에 이르게 하소서. 제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저희에게 해로운 것을 모두 물리쳐 주시어 저희가 평안한 몸과 마음으로 자유로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2024년 11월 15일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11월 15일 (금)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11월 1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2요한 4-9)
    이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는 이라야 아버지도 아드님도 모십니다.

  • 오늘 복음
    (루카 17,26-37)
    그날에 사람의 아들이 나타날 것이다.

  • 오늘 말씀 카드
    (루카 17,31)
    뒤로 돌아서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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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요한 4-9
오늘 제1독서

 

이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는 이라야 아버지도 아드님도 모십니다.

선택받은 부인이여, 


그대의 자녀들 가운데, 우리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계명대로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매우 기뻤습니다. 


부인, 이제 내가 그대에게 당부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대에게 써 보내는 것은 무슨 새 계명이 아니라 우리가 처음부터 지녀 온 계명입니다. 곧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가 그분의 계명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고, 그 계명은 그대들이 처음부터 들은 대로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속이는 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는 속이는 자며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일하여 이루어 놓은 것을 잃지 않고 충만한 상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을 살피십시오.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그것을 벗어나는 자는 아무도 하느님을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이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는 이라야 아버지도 아드님도 모십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다.

 

 

루카 17,26-37
오늘 복음

 

그날에 사람의 아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28 
또한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29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30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 

31 
그날 옥상에 있는 이는 세간이 집 안에 있더라도 그것을 꺼내러 내려가지 말고, 마찬가지로 들에 있는 이도 뒤로 돌아서지 마라. 

32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33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3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6)·37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어디에서 말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11월 15일
임영준 베드로 신부

 

✚ 미사시작 00:23

✚ 강론시작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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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탈무드에 나오는 유명한 세 친구 이야기

어떤 사람에게 세 명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첫 번째 친구를 가장 좋은 친구로 여겼고 늘 함께 있고 싶어 하였습니다. 두 번째 친구는 좋아하기는 하였지만, 첫 번째 친구만큼 소중하게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세 번째 친구에게는 별로 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임금에게서 궁으로 들어오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혹시 무슨 벌을 받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진 그는 세 명의 친구에게 임금 앞에 함께 가 달라고 차례로 부탁하였습니다.

그가 가장 좋은 친구라고 여긴 첫 번째 친구는 딱 잘라 거절하였습니다. 다음 두 번째 친구는 궁전 문 앞까지는 함께 가 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어렵다고 말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친구에게 부탁하였는데 그는 흔쾌히 대답하였습니다. 

“그래, 기꺼이 함께 가겠네. 자네는 어떤 나쁜 짓도 하지 않았으니 두려워할 것 없네. 내가 함께 가서 임금께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잘 말씀드려 주지.”

임금의 부름은 죽은 뒤 하느님 앞에 서는 것을 뜻합니다. 

첫 번째 친구는 재산입니다.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돈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을 모으려고 갖은 애를 쓰지만, 죽은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두 번째 친구는 가족과 친척들입니다. 그들은 무덤까지 따라와 주지만, 죽은 이가 무덤에 묻히고 나면 그를 혼자 남겨 두고 돌아갑니다. 

세 번째 친구는 선행입니다. 그의 선행은 그가 죽은 뒤에도 영원히 그와 함께 남아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탈무드에 나오는 유명한 세 친구 이야기로, 하느님 앞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 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 마지막 순간에도 집과 들에 남겨진 재산에 마음을 쓰는 어리석은 자들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 동행할 친구는 돈이나 재산이 아닌 오직 사랑의 실천뿐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그날에, 나는 어떤 사람?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의 날?’ 모든 것이 끝장나는 종말의 날? 모든 이가 심판받는 심판의 날? 모든 것이 구원되는 구원의 날?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날?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얘기하렵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야말로 주님의 날이라고. 사람의 아들로 오신 분이 주인님으로 오실 날이라고. 그러면 그날은 나의 날이 아니지요. 

그리고 종들인 우리 날이 아닙니다. 주인님을 생각지 않고 하던 행위는 그만 중단해야 합니다. 주인님을 쏙 빼놓고 갖는 관계는 모두 중단되어야 합니다. 

루카 복음은 12장과 16장에서 각기 집사의 비유 얘기가 나옵니다. 집사는 종 가운데서도 주인의 재산과 가솔들을 돌보는 종입니다. 

그런데 집안을 맡기고 떠났던 주인님이 돌아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잘하고 있었으면 상을 받고 잘못하고 있었으면 벌을 받겠지요. 

그러나 잘하고 있었건 잘못하고 있었건 일단 주인님 없이 하던 모든 일은 끝납니다. 

그래서 주인님이 오시는 그날은 일단은 우리의 모든 일이 다 끝나는 날입니다. 그러니 잘하고 있었건 잘못하고 있었건 어쨌거나 그날은 끝나는 날입니다. 

그러나 살아온 삶에 따라 어떤 사람에게는, 소풍이 끝나는 날일 수도, 힘들고 힘든 여정이 끝나는 날일 수도, 떨어지기 힘든 손을 끝으로 놓는 날일 수도 있을 텐데 나는 어떤 사람일까요? 이것을 묵상하고 성찰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그 때를 미리 준비하라

어제 <복음>에서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사람의 아들의 날”에 대한 때와 장소와 방식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이어서, 오늘은 재림을 맞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 듣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의 때’에 벌어질 일을 물과 불에 의해 멸망하게 된 구약의 두 사건, 곧 노아(창세 6-7장)와 롯(창세 19장)때와 같을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재림’의 준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노아와 롯의 시대에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노아 때에 대해서,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그저 평범하게 살아갔음을 말하고 있을 뿐, 특별한 죄나 부패를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들은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사랑에 소극적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의 죄가 아니라, 그들이 장차 일어날 일에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오직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는 일에만 몰두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우리가 그들처럼, 비록 죄를 짓지 않는다하더라도 자신들의 인간적인 세속의 삶에 빠져 주님을 알려하지도, 하느님을 경외하지도, 하느님의 의로움을 구하지도 않고 타자를 향해 자신을 내놓은 사랑을 실현하지 않으면, 멸망을 당하리라는 말씀입니다. 

<마태오복음>의 25장의 ‘심판의 비유’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들이 ‘사랑하지 않았음’이 문제였음을 말해줍니다(마태 25,31-47).

한편, 롯의 때에는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불과 유황으로 멸망당하였습니다. 롯도 노아와 마찬가지로 장차 닥쳐올 재앙을 미리 알고서 소돔을 떠나는 조처를 취하고 구원받을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집안에 있는 세간 곧 소유물에 대한 애착으로 뒤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루카 17,33)

결국, 이 두 이야기는 ‘사람의 아들의 날’을 미리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곧 먹고 마심과 자신의 소유와 목숨의 보존에 매이지 말고, 그 때를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의 삶이 어디를 향하고, 누구를 향하여 있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곧 죽음을 향하여 있는지, 생명을 향하여 있는지를 보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루카 17,37).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7,33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주님!
제 자신이 아니라, 
당신을 향하여 살게 하소서. 

제 삶이 썩어 부패한 
시체의 삶이 되지 않게 하소서.

당신 말씀이 살아 팔딱거리는 
생명의 삶이 되게 하소서.

자신의 보존을 향한 
죽음의 삶이 아니라
타인을 향하여 자신을 내어주는 
생명의 삶이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왜 내 주위엔 유독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들만 있을까?

오늘 복음에서 마지막 심판의 기준이 나옵니다. 마치 노아의 홍수 때와 같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노아는 하느님의 뜻에 집착하는 사람이었고, 물속에 빠진 이들은 세상 것에 집착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세상 것과 하느님 것을 동시에 좋아할 수는 없습니다. 하늘에 집착하는 사람은 하늘로 가고 땅에 집착하는 사람은 땅으로 갑니다.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동시에 좋아할 수는 없습니다. 

이어 노아의 홍수와 비슷한 내용으로 롯의 아내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롯의 아내는 세상으로 상징되는 소돔에 두고 온 것들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정말 유황불로 온 소돔 땅이 멸망하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보지 말라고 하시는 명을 어기고 뒤를 돌아봅니다. 그렇게 되자 소금기둥이 되어버려 더 이상 천사의 인도를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세상 것에 대한 집착이 있는 것만으로 멸망하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목숨을 보존하려고 하는 이유는 목숨을 지켜줄 이가 옆에 없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잃는 사람은 다시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집착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이는 심판의 기준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란 뜻입니다. 같이 침상에 있어도, 같이 맷돌질해도 행위로는 그 사람을 판별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그 사람이 자신을 지켜줄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의해 세상 것에 집착하느냐, 다 버리고 하느님 나라를 향하느냐가 결정됩니다. 

제자들은 “주님, 어디에서 말입니까?”라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수수께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

독수리는 시체를 뜯어먹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독수리를 부르는 존재는 시체 자체입니다. 생명이 있는 사람에게 독수리는 달려들 수 없습니다. 자칫 자신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왜 내 주위엔 나에게 도움 되는 사람은 없고 나에게 상처를 주는 이들만 있을까?”라고 한탄합니다. 안타깝지만, 그 이유는 자신이 죽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퀸의 보컬 싱어, 프레디 머큐리는 명성을 얻자 교만해집니다. 

그래서 팀원들을 저버리고 혼자 솔로 앨범을 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가 만나고 있는 이들이 그를 병들게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프레디 머큐리가 자신이 잘못 가고 있었음을 어떻게 깨달았는지를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썩었다. 그래서 주위에 날파리들이 많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있습니다. 깨진 유리창이 그대로 있다면 사람들은 또 돌을 던집니다. 그 집에 주인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 안에 하느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다면 내가 강해 보이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던지는 상처들이 금방 치유되고 있음을 보고는 그 안에 강한 주인을 모시고 있음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미움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하느님이 그 사람 안에 사실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는 자신을 지켜줄 사람이 없어서 세상 것에 집착하게 됩니다. 오드리 햅번이 그런 경우였습니다. 

오드리 헵번은 나이도 많고 별로 유명하지도 않았던 배우 멜 페러란 사람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오드리 헵번은 남편의 재기를 위해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남편을 위한 배역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오드리 헵번은 남편의 촬영장에 나타나 허드렛일하며 남편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흥행 보증수표였던 그녀는 남편이 출연하는 별로 인기도 없는 영화에 동반 출연하여 흥행에 성공하게 합니다. 물론 남편이 연출한 형편없는 영화에 함께 출연하여 최초로 흥행에 참패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에겐 오래전부터 다른 여인이 있었습니다. 오드리 햅번은 남편의 불륜 현장을 목격했음에도 이혼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임신하여 남편을 잡아두려 했지만, 남편이 자녀를 원하지도 않고 결국 영화 찍다가 낙마하여 유산되고 맙니다. 그런 아내를 돌보지도 않고 오직 돈과 재산만을 바라는 남편과의 결혼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어 14년 만에 이혼하고 맙니다.

둘째 남편은 이탈리아 의사였습니다. 그녀는 여행 중 우연히 만난 그 사람과 또 사랑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두 번째 남자도 역시 바람둥이였습니다. 남편의 바람피우는 현장을 신문에서 보고야 알게 됩니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던 오드리 헵번의 결혼생활은 비극의 연속이었습니다.  
    
왜 그녀의 결혼생활은 그렇게 원만치 못했던 것일까요? 바람둥이만 남편으로 맞아들였던 것일까요? 남편들의 책임도 있겠지만 오드리 헵번 역시 결혼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녀에겐 ‘배고픔’이란 게 있었습니다. 

그녀가 6살 되던 해 아버지가 가정부와 바람을 피우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딸에게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은 지옥 같은 일이라며 집을 나가버립니다. 그 이후로 오드리 헵번은 아버지를 만나지 못합니다. 

오드리 햅번은 나치 시절에 길거리에서 음식을 주워 먹어야만 했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부재는 엄청난 상처였습니다. 그러니 생존을 위해 세상 것에 얽매여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보고 달려드는 독수리 떼가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녀의 부와 명성, 아름다운 여성성을 노렸습니다. 그녀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독수리라 하신 것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로마군대를 상징합니다. 로마군대의 상징이 독수리입니다. 

어떤 사람이 세상에 매인 끈을 끊으려고 가진 모든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수도자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어려울 때 자기가 쓰려고 얼마간을 남겨 숨겨 두었습니다. 그가 스승을 찾았을 때 스승은 그의 행위를 이미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대는 진정 수도자가 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먼저 마을로 내려가, 고기를 조금 사서 그대의 벗은 몸에 달아매고 다시 이곳으로 오게나.” 

그는 스승의 지시대로 자기의 몸에 고기를 달고 산길을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몸에 달린 고기는 흔들거리며 냄새를 풍겼습니다. 냄새를 맡은 들개와 새들이 주위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 고기를 노리고 그에게 덤벼들었습니다. 그는 들개들과 새들에게 대항하며 도망쳤으나 그것들은 끝까지 따라붙었습니다. 

들개들과 새들의 계속되는 공격에 그는 많은 상처를 입었고 너무나 지쳐버렸습니다. 이내 그는 그것들이 자신에게 달린 고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차 없이 그 고기를 던져버렸습니다. 그러자 짐승들은 자신에게서 떨어졌고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가 돌아와 상처투성이가 된 몸을 보이자, 스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을 버리면서도 자기의 돈에 집착하는 자에게는 마귀가 이처럼 공격한다네. 모든 것을 벗어버린 진정한 빈 몸이 되게나.”

오드리 햅번은 두 번의 결혼 실패를 두고 더는 세상 것에 집착하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그녀는 어렸을 때 자신에게 초콜릿과 식량원조를 해 주었던 미군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유니세프의 홍보대사를 자처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이가 된 것입니다. 노아가 배를 만들어 동물들을 태우게 되는 삶으로 전환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생존이 아닌 다른 이들의 생존을 위해서 사니 더는 그녀에게 파리떼가 몰려들지 않았습니다. 좋은 친구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녀는 죽기 직전까지 좋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았습니다. 

내 안에 주님을 가지면 다 가진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 것에 집착하지 않고 그러면 주위에 점점 천상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드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내가 안 좋은 이들에게 둘러싸이는 이유는 내가 그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늘로 올라야 합니다. 그 방법은 내 안에 하늘에서 오신 분을 모시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상처가 금방 치유되는 사람을 보면 두려워합니다. 이 믿음은 누구도 나에게 돌을 함부로 던질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그날에 사람의 아들이 나타날 것이다.

1955년 사회 심리학자 솔로몬 애쉬는 ‘동조 실험’을 했습니다. 여덟 명의 대학생을 모았는데, 한 명만 피실험자이고 나머지 일곱 명은 미리 고용한 사람이었습니다. 미리 고용된 일곱 명에게 ‘잘못된 답’을 고르게 했습니다. 명백히 틀린 답인데도 이 일곱 명은 이 답이 맞다면서 잘못된 답을 지지했습니다. 그때 피실험자 한 명은 자신이 생각하는 정답을 혼자서 말했을까요? 아니면 다른 일곱 명과 함께 틀린 답을 선택했을까요? 피실험자의 75% 이상이 일곱 명의 생각에 동조했습니다. 즉, 같이 잘못된 답을 지지했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주변 그룹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따르고, 나중에는 잘못된 것조차 모르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이 과연 세상 안에서만 있을까요? 교회 내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일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종종 목소리 큰 사람에 묻혀서 잘못된 것을 같이 선택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올바른 개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또 반영되지도 않게 됩니다. 그 결과 공동체 자체가 주님의 뜻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다수의 의견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 공동체는 단순히 의견 모으는 곳이 아닙니다. 함께 주님 곁으로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곳입니다. 이를 위해 자기 목소리만을 키워서는 안 됩니다. 겸손의 마음, 사랑의 마음만이 공동체를 아름답게 할 수 있습니다. 이상한 오답에 동조했던, 예수님을 반대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은 아니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의 날을 이야기하십니다. 그러면서 옛날의 일을 예로 들어주십니다. 먼저, 노아 때입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은 모두 멸망하고 맙니다. 다음으로 롯 때의 일입니다. 이때의 사람들도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지만,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모두 멸망했습니다. 
 
이 당시의 사람들은 왜 회개하지 않았을까요? 다수의 의견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가 하느님을 멀리하면서 선보다 악을 행하는 것에 동조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을까요? 어쩌면 그 당시보다도 더 심한 물질 만능주의에 빠져서 악의 길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도래할 마지막 때를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나타날 때도 여전히 물질에 집착하여 제 목숨만 살리려 하면 오히려 목숨을 잃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우리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겸손과 사랑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명언

위대한 발견의 씨앗은 언제나 우리 주위를 떠다니지만, 받아들일 준비가 된 마음에만 뿌리를 내린다.

- 조셉 헨리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어느 때고 삶의 마지막 시간이 도래합니다. 어리석음으로 시작하여 어리석음으로 사라지는 우리들의 삶이 되지 않기를 기도드립니다.

우리의 어리석음을 이겨내는 힘은 하느님을 믿는 믿음으로부터 나옵니다. 망각할 수 없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삶의 지혜는 기억해야 할 것을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와 삶의 경고는 우리를 삶의 본질로 이끕니다.

현재의 삶을 다르게 살 수 있습니다.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은 하느님께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어리석음을 십자가로 치우는 것입니다. 소금기둥이 아니라 십자가입니다.

하느님 구원의 여정을 기억합니다. 다시 시작되는 하느님을 향하는 믿음과 지혜의 새로운 삶입니다. 우리 삶의 마지막이 구원자이신 하느님과의 기쁜 만남이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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