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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4/08/05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4.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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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저를 구하소서. 주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 저의 도움, 저의 구원은 주님이시니, 주님, 더디 오지 마소서.

주님, 주님의 종들에게 끊임없이 자비를 베푸시니 주님을 창조주요 인도자로 모시는 이들과 함께하시어 주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고 새롭게 하신 모든 것을 지켜 주소서.

2024년 8월 5일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4년 8월 5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랜선으로 초대해요!

2024년 8월 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8주간 월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예레 28,1-17)
    하난야, 주님께서 당신을 보내지 않으셨는데도 당신은 백성을 거짓에 의지하게 하였소.

  • 오늘 복음
    (마태 14,13-21)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 오늘 말씀 카드
    (마태 14,18)
    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

 

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 (마태 14,18) by 피어나네 성경 말씀 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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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 28,1-17
오늘 제1독서

 

하난야, 주님께서 당신을 보내지 않으셨는데도 당신은 백성을 거짓에 의지하게 하였소.


유다 임금 치드키야의 통치 초기 제사년 다섯째 달에, 기브온 출신의 예언자이며 아쭈르의 아들인 하난야가 주님의 집에서 사제들과 온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에게 말하였다.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바빌론 임금의 멍에를 부수기로 하였다. 


두 해 안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이곳에서 가져가 바빌론으로 옮겨 놓은 주님의 집 모든 기물을, 내가 이곳에 다시 돌려 놓겠다.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다 임금 여호야킴의 아들 여콘야와 유다의 모든 유배자를 이 자리에 다시 데려다 놓겠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정녕 바빌론 임금의 멍에를 부수겠다.’” 


그러자 예레미야 예언자가 사제들과, 주님의 집 안에 서 있는 온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난야 예언자에게 말하였다. 


예레미야 예언자가 말하였다. “아무렴, 주님께서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소! 주님께서 당신이 예언한 말을 실현시키시어, 주님의 집 모든 기물과 모든 유배자를 바빌론에서 이곳으로 옮겨 주시기를 바라오. 


그러나 이제 내가 당신의 귀와 온 백성의 귀에 전하는 이 말씀을 들어 보시오. 


예로부터, 나와 당신에 앞서 활동한 예언자들은 많은 나라와 큰 왕국들에게 전쟁과 재앙과 흑사병이 닥치리라고 예언하였소. 


평화를 예언하는 예언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그가 참으로 주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로 드러나는 것이오.” 

10 
그러자 하난야 예언자가 예레미야 예언자의 목에서 멍에를 벗겨 내어 부수었다. 

11 
그러고 나서 하난야는 온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두 해 안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의 멍에를 모든 민족들의 목에서 벗겨 이와 같이 부수겠다.’” 그러자 예레미야 예언자는 자기 길을 떠났다. 

12 
하난야 예언자가 예레미야 예언자의 목에서 멍에를 벗겨 부순 뒤에, 주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내렸다. 

13 
“가서 하난야에게 말하여라.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는 나무 멍에를 부수고, 오히려 그 대신에 쇠 멍에를 만들었다.′ 

14 
참으로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이 모든 민족들의 목에 쇠 멍에를 씌우고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들이 그를 섬길 것이다. 나는 들짐승까지도 그에게 넘겨주었다.′’” 

15 
예레미야 예언자가 하난야 예언자에게 말하였다. “하난야, 잘 들으시오. 주님께서 당신을 보내지 않으셨는데도, 당신은 이 백성을 거짓에 의지하게 하였소. 

16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오. ‘내가 너를 땅 위에서 치워 버리리니, 올해에 네가 죽을 것이다. 너는 주님을 거슬러 거역하는 말을 하였다.’” 

17 
하난야 예언자는 그해 일곱째 달에 죽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마태 14,13-21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때에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13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곳으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여러 고을에서 그 소문을 듣고 군중이 육로로 그분을 따라나섰다. 

1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15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 

16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17 
제자들이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19 
군중에게 풀밭에 자리를 잡으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20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21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8월 5일
배수판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미사시작 00:23

✚ 강론시작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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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 : 미사(15:00) 후 성시간(16:00)
    주일 15:00 / 월 15:00 / 화 15:00 / 수 15:00 / 목 15:00 / 금 15:00 / 토 15:0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안소근 실비아 수녀

 

참예언자와 거짓 예언자

예레미야는 하난야의 말에 “주님께서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소!”(예레 28,6)라고 말합니다. 그는 멸망을 바라지 않지만, 하느님의 말씀이 심판을 선고하라는 것이었기에 그 말씀을 선포합니다. 하난야는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는데도 임금과 백성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물리쳐 버립니다.

내 마음 안에도 참예언자와 거짓 예언자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알아보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때는 명백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알고 받아들일 때도 있지만, 알면서 거부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 안에 있는 거짓 예언자가 나를 속이는 순간에는, 정말 깊이 돌아보지 않으면 속아 넘어갑니다. 사람들이 하난야의 말을 따라가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네부카드네자르의 멍에를 부수시고 성전 기물들을 되찾게 하여 주신다는 말이, 그들이 믿고 싶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마음 안에서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믿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그 마음으로 속게 됩니다. 그런 마음은 여러 가지 그럴듯한 이유를 대면서 하느님의 뜻이라고 속삭입니다. 

식별은 쉽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인간의 예측을 벗어나기 때문에, 어떤 도식에 따라 간단하게 알아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난야에게, 평화를 예언할 때는 그 말이 이루어져야 참예언자로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멸망을 예언할 때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심판 선고를 들은 이들이 회개하면 그 심판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믿을 때는, 진실하게 깨어 있는 사람만이 그것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우리는 하느님 자선의 통로들

“예수님께서는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오늘 복음은 장정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얘기입니다. 제자들은 굶주린 사람들을 걱정하고, 그들을 돌려보내자고 주님께 제안합니다. 가진 것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우리가 나무랄 수가 없습니다. 저도 보통 그렇게 생각하고 아마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실 것이니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주님께서도 제자들을 나무라시지는 않고 그러나 “그들을 돌려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십니다. 그러니까 나무라시지는 않고 새로운 길을 가르쳐주시고자 하심입니다. 

새로운 길이란 제자들이 먹을 것을 주긴 하지만 실은 당신이 주시는 방식인데 지금까지 제자들은 이렇게 줘 본 적이 없고 어쩌면 우리도 그렇습니다. 없는 것을 어떻게 줍니까? 사실입니다. 없는 것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결과를 놓고 보면 줄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줄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줄 마음도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가진 것이 없어도 신앙인에게는 하느님이 계십니다. 

하느님이 안 계시면 진짜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줄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 다시 말해서 사랑이 있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주십니다. 그러므로 내 것을 주거나 내 것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받아서 나눠주는 것일 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 형식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받아 나눠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것도 받는 것과 나누는 것입니다. 우선 받는 것을 잘해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 가운데 받는 것을 잘못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신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줄 마음이 없이 받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받아서 자기 주머니를 채우려는 것이니 하느님께서 주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제게 많은 후원을 해주시는데 그것으로 제 주머니 채운다고 생각하시면 후원해주시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주시는 것을 넙죽넙죽 잘 받습니다. 

옛날에는 정말 저의 가난을 생각하며 안 받으려고 했지요. 그러나 지금 저는 여러분이 주시는 것을 다 받는데 그것은 여러분이 주님께 받으신 것을 오늘 제자들처럼 나누시도록 제가 다만 통로가 되어 드리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 자선의 통로들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예수님 앞에서 그 정도의 꿈밖에 꿀 수 없단 말인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빵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이십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예수님은 그들을 돌려보내야 한다는 제자들에게 그들을 먹이라고 하십니다.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만약 제자들이 자신들이 함께하시는 분이 누구신지 알았더라면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함께 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니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실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믿음과 제자들의 믿음의 차이입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당신 믿음을 본받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씨를 뿌리십니다. 그 씨가 잘 자라면 새들이 깃들어 쉬게 됩니다. 이것이 하늘 나라입니다. 행복입니다. 씨는 꿈입니다. 그런데 그 꿈은 누군가를 쉬게 하고 힘을 주는 일이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자기가 가진 빵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를 내어놓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지치지 않습니다.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것은 불안이고 인정받지 못함인데, 이웃을 행복하게 하려는 사명을 가진 이는 능력자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에 지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온 세상을 배불리고 더 나아가 온 우주에 이익이 되는 일입니다. 그러니 단순히 나의 능력으로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식의 작은 꿈은 버립시다. 작은 꿈은 예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스웨덴의 화학자, 엔지니어, 발명가인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으며 355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폭발물 산업에서의 그의 발명품과 사업 벤처는 그를 믿을 수 없을 만큼 부유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노벨은 전쟁과 산업 분야에 널리 사용된 그의 발명품의 파괴적인 잠재력 때문에 종종 비판받았습니다.

1888년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의 동생 루드비히 노벨(Ludvig Nobel)이 프랑스 칸에서 사망했습니다. 프랑스 신문은 실수로 Ludvig 대신 Alfred의 사망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죽음의 상인은 죽었다(The Merchant of Death is Dead)라는 제목의 부고 기사에서는 노벨이 폭발물을 발명하고 폭발로 인한 파괴로 이익을 얻었다고 비난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보다 더 빨리 더 많은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찾아 부자가 된 알프레드 노벨 박사가 어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사건으로 노벨은 마치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스쿠르지 영감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고 난 후 변화하게 된 똑같은 충격을 받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재물이 자신에게 묶여 있다면 여전히 죽음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남을 것임을 깨닫습니다. 

노벨은 자기 재산을 인류에 대한 긍정적인 기여에 보답하는 데 바치기로 했습니다. 그는 2,000억 정도 되는 재산으로 어떻게 세상에 지속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물리학, 화학, 의학, 문학, 평화 분야에서 업적을 이룬 개인과 조직에게 수여하는 노벨상을 제정하기로 결심했습니다. 1895년에 작성된 그의 유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의 남은 실현 가능 재산 전체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되어야 합니다. 나의 유언집행인이 안전한 증권에 투자한 자본은 기금을 구성하고, 그 이자는 매년 전년도에 인류에게 가장 큰 이익을 안겨주었을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상금 형태로 분배되어야 합니다: 물리학, 화학, 의학, 문학, 평화.”

2,000억을 가진 부자들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노벨은 그 돈으로 온 인류를 먹일 방법을 찾았습니다. 알프레드 노벨의 노벨상 제정은 그의 유산을 ‘죽음의 상인’에서 ‘인류의 은인’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자신이 가진 능력과 재물에 감사할 줄 알 때,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것으로 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여길 때 사람은 그것으로 세상의 배를 불리는 일에 사용하게 되고 이것은 그리스도를 닮는 일이 됩니다. 

먼저 가진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물고기를 잡는 기술이든, 공부하는 기술이든, 예체능의 능력이든 그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께 그것을 봉헌하면 주님께서는 그것으로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십니다. 

나는 그 일의 일꾼이 됩니다. 이것으로 은총의 통로가 되고 이 은총의 통로가 됨으로써 그 은총을 주는 이와 하나가 됩니다. 이 때문에 5천 명을 먹이는 기적 안에서 정작 놀라는 것은 빵과 물고기를 봉헌하고 그것을 다시 나누어주는 자기 자신입니다. 하느님께서 도와주고 계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어느 책에서 영화 스타워즈에서 제다이의 전사 요다가 이렇게 말했다고 소개합니다. 
 
“해보겠다고? 해보겠다는 건 없어!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만 있을 뿐!” 
 
솔직히 이 영화를 보지 않아서 어떤 내용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이 말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해보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참 많지요. 그러나 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과연 변하는 것이 있을까요? 많은 사람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면서 이런저런 다짐을 합니다. 하지만 소망만 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과연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유명한 괴테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적용해야 한다. 생각만으로는 부족하다. 행동해야 한다.” 
 
불가능한 상황이어도 포기하고 좌절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하려는 사람만이 변화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변하고 싶다고 하면서도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는 쪽으로 기울어지는 우리가 아니었을까요? 
 
죽은 사람의 물건을 정리해 주는 유품정리사들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은 대게 제일 좋은 것은 써보지도 못한 채 죽는다고 말합니다. 하늘 나라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이 세상 생활에서 하는 사랑의 행동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랑만이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보화를 쌓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의 말과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을 해보지도 못하고 주님 곁으로 간다면 큰 꾸중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많은 군중이 몰려들었습니다. 그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신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을 고쳐 주시면서 하늘 나라의 표징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녁이 되어 문제가 생겼습니다. 먹을거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줄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그들은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라면서 불가능하다고 항변합니다. 
 
우리의 사랑 실천만이 하느님의 놀라운 표징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의 실천은 아주 작고 보잘것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랑을 받으신 예수님께서 가장 귀한 것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따라서 포기하고 좌절하는 쪽으로 향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든 실천하는 사랑을 통해 하느님의 일이 이 세상에서 환하게 드러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희망은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일어나 옳은 일을 하려 할 때, 고집스러운 희망이 시작된다. 새벽은 올 것이다. 기다리고 보고 일하라. 포기하지 말라.

- 앤 라모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나눔과 감사의 의미를 이미 압니다. 나눔과 감사를 동반하는 참된 사랑이 사랑에 너무나 인색한 우리들에게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나누어도 줄어들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나누면서 깊어지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을 받아 마신 우리가 살아 있는 사랑을 다시 실천합니다. 사랑으로 지은 밥과 빵은 사람의 중심이 다름 아닌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임을 보여줍니다. 빵은 사람이고 빵은 주님이십니다. 같은 시간을 살아도 사랑은 저마다 다릅니다. 우리는 헛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버리고 버려져야 할 빵이 아니라 함께 나누고 함께 배부를 하느님의 빵입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일은 성체성사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밥이 되어 함께 머물 수 있는 사랑을 실천하십니다. 밥이 가르쳐주고 있는 참된 사랑은 우리의 참된 실천을 독려합니다. 

빵을 떼어 우리들에게 내미시는 이 사랑을 받아먹습니다.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함께와 서로를 향해 퍼내고 또 퍼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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