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복된 야고보 사도가 사도들 가운데 첫 번째로 복음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게 하셨으니 그의 영광스러운 증거로 교회를 튼튼하게 하시며 하느님의 보호로 교회를 지켜 주소서.
2024년 7월 25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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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2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야고보 사도 축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2코린 4,7-15)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 오늘 복음
(마태 20,20-28)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 오늘 말씀 카드
(2코린 4,13)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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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코린 4,7-15
오늘 제1독서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형제 여러분,
7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8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10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그리하여 우리에게서는 죽음이 약동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약동합니다.
13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말하였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우리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합니다.”
14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어 여러분과 더불어 당신 앞에 세워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5
이 모든 것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은총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 나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마태 20,20-28
오늘 복음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7월 25일
최성규 레오 신부
✚ 성 야고보 사도 소개 00:06
✚ 미사시작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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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덕 베드로 신부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이 말씀을 보면, 야고보와 요한만이 아니라 제자들 모두 높아지고 싶은 마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주목받고 싶은 마음, 높아지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등은 교회 안에서 특별한 부르심이나 직분을 받게 되면 쉽게 찾아오는 유혹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을 쫓아가다 보면, 우리 안에 하느님을 따르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져 버립니다.
‘하느님 일의 주인’이 되어 버려, ‘하느님의 뜻을 찾는 기도’는 메말라 가고 복음적 판단도 흐려지게 됩니다. 시기, 질투, 상처, 미움, 증오, 분노, 교만이 열매를 맺습니다. 하느님의 신비를 드러내야 할 부르심 또한 자신을 드러내고 돋보이게 하려는 도구나 권력으로 써 버립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면서 하느님을 잃어버리는 불행한 신앙인이 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겠습니다.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는 ‘사도직’이라는 엄청난 보물을 ‘질그릇’에 담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질그릇’은 바오로 사도 자신을 뜻합니다. 질그릇은 깨지기 쉽고 보물을 담을 만한 그릇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사도직이 바오로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볼품없는 그를 통하여 당신 힘을 드러내시는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자리는 ‘구유’였고, 마지막 자리는 ‘십자가’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볼품없고 낮은 모습으로 구원의 신비를 드러내셨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받은 부르심과 직분이 ‘하느님의 힘’을 드러내려면 우리 스스로가 질그릇이 되고, 주님의 거처인 구유와 십자가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를 잃어버린 봉사자가 되지 않도록 하여야겠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린 봉사자가 되지 않도록 하여야겠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잃어버린 봉사자가 되지 않도록 하여야겠습니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고배를 마셔야 축배도
제자들 가운데 저만 그리된 것이 아니겠지만 주님, 제가 당신의 첫 제자가 된 것은 저의 선택이 아니라 당신 선택이고 당신에게 홀려 당신을 따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진짜 당신에게 홀렸습니다. 이것저것 재어 보고 당신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도깨비에게 홀리듯 홀려서 당신을 따라갔습니다.
처자식이 있고 그래서 벌어먹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저에게 와서 느닷없이 “나를 따르라!”라고만 했는데 그냥 따라갔으니 홀린 것이지요.
그런데 저뿐 아니라 제 동생도 그리고 베드로와 안드레아도 그랬으니 저의 문제만이 아니고 당신에게 끄는 힘이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 따라다닐 때 당신의 말을 듣고 있으면 당신 말씀에는 권위가 있었으며 그것은 영적인 권위였기에 악령들도 그 말씀에 꼼짝하지 못하고 쫓겨나거나 호수도 잠잠해졌기에 당신을 따라나선 것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확신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게다가 당신은 저와 아우 그리고 베드로의 형제를 특별히 사랑해주셨지요. 죽은 소녀를 살리는 대단한 기적과 타볼산의 변모를 저희에게만 보여주셨잖습니까?
그래서 예루살렘에 거의 다다랐을 때 저희는 다른 제자들 특히 베드로가 화낼 줄 알면서도 용기를 내어 당신께 청했습니다.
당신이 왕이 되면 그 왼편과 오른편에 저와 아우가 않게 해달라고.
그때 당신은 저희에게 “내가 마실 잔을 너희도 마시겠느냐?”고 물으셨고, 저희는 호기롭게 그 잔을 마시겠다고 하였고 주님도 그렇게 될 거라고 하셨지요.
그러나 당신이 겟세마니에 저희 넷만 또 따로 데리고 가셨을 때 그 뜻이 무엇인지 그때라도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당신은 그때 피땀 흘리시며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소서!” 하셨는데 저희는 그 잔을 같이 마시지 않고 쿨쿨 잠만 자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때 저희는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린 것이었습니다. 당신마저 마시고 싶지 않았던 그 쓰디쓴 고배를 당신의 대관식 때 마실 축배의 샴페인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축배의 샴페인은 고배를 마신 다음임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목마르다!” 하시며 돌아가셨고 축배를 마시려던 우리는 그래서 더 쓰디쓴 고배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때야 같이 마시자던 잔이 수난의 잔이라는 것을 깨닫고, 성령을 받고 나서야 그 잔을 같이 마실 수 있게 되었으며, 지상 왕국의 첫 자리를 주십사 한 저는 너무 죄송한 나머지 순교의 첫 자리를 주십사 청하였고 그래서 그렇게 됐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고배를 마셔야지만 진정 축배도 마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야고보가 되어 짧게 써본 회상기인데 이런 회상기를 쓰게 된 것은 어제 경험 때문입니다.
너무 덥기에 일찍 행진을 출발한 저희는 한낮에 진부령을 넘고 있었습니다. 평지를 걸어도 지치고 입이 탈 지경인데 막바지에 고개를 넘으니 그야말로 입이 바짝바짝 타 말려 들어가는 느낌이었을 때 마침 구세주가 나타났습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서 가지고 오신 겁니다. 그때 제 입에서 이런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습니다.
지옥이 있었기에 천국이 있는 것이다!
고배를 마셔야지 축배도 있는 겁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성장하려면 제대로 분노하라!
오늘은 성 야고보 축일입니다.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도 있지만, 오늘의 야고보는 요한과 함께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입니다. 이들은 야망이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이들의 어머니는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청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높은 자리에 앉으려면 그만큼 고생해야 할 것이라는 의미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라고 물으십니다. 그런데 그들은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마시게 될 잔이 온유함과 겸손의 잔임을 알려주시기 위해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라고 하십니다.
야고보는 열정이 넘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섬기는 삶을 열정적으로 살았을 것이고 그렇게 순교하였을 것입니다. 그러한 열정이 어디서 나올까요? 예수님을 박해하는 사마리아인들에게 불을 내려 멸망시켜버리려고 분노하는 야고보와 요한에게 예수님은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습니다. 사실 열정이 없으면 아무 일도 이루어내지 못합니다. 모든 성취는 바로 ‘분노’에서 시작됩니다.
1948년 가난한 어촌에서 엿장수의 딸로 태어나, 가발공장, 식당 등에서 일하였고 총으로 쏴 죽이고 싶을 정도로 폭력이 심한 남편을 피해 단돈 100달러를 갖고 미국으로 식모살이를 떠난 여자. 미국에서는 식당에서 일하며 대학을 다녔고, 76년 미 육군에 들어가 소령으로 예편, 50세가 넘은 나이에 하버드 박사과정에 다니는 여자, 서진규. 그녀는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에서 ‘이만큼 성공하기까지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반항심과 복수심이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반항심과 복수심, 곧 분노에 대해 제대로 알아봐야 합니다. 서진규 씨는 정말 남편과 세상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으로 살았을까요? 물론 그들로부터 당연히 무시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복수심은 결국 자기를 향해야 했습니다. 참다운 복수는 자신이 그러한 처지로 살 존재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내는 것입니다.
그녀는 분명 누군가에게 - 아마 부모 중 적어도 한 명 일 수 있을 것입니다 – 사랑받았습니다. 사랑 안에는 ‘기대’가 들어있습니다. 우리가 왜 우리 몸의 회충이나 모기를 사랑하지 못할까요? 기대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태아는 기생충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태아를 사랑합니다.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그러한 기대를 받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 기대에 못 미칠 때 분노하는 것입니다.
만약 타인이나 세상만 탓한다면 그 사람은 사랑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그러한 처지를 타인의 탓을 하며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분노는 이러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걷는데 나는 물 위로 뛰어내릴 용기조차 내고 있지 못하다면 분노가 일 수밖에 없습니다. 베드로처럼 박차고 뛰어내릴 용기를 내야 합니다. 이 용기가 바로 분노에서 나옵니다. 분노는 나를 사랑해 준 분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솟아나는 나를 변화시킬 유일한 힘입니다.
‘그릿(GRIT)’의 저자 앤절라 더크워스는 아버지로부터 “니가 아무리 내 딸이긴 하지만, 머리가 나쁘니 성공하긴 어려울 거다. 재능이 없으면 세상에서 성공하기 힘들어.”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이 말이 평생 트라우마로 남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인정하기 싫었습니다.
“뭐랄까, 단순히 ‘내가’ 재능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기보다는, 재능 없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내고 싶었어요.”
그때부터 성공에 관한 연구를 계속 진행했고, 10년이 넘어가는 연구에 다들 시간 낭비라고 했지만, 그녀가 43세 되던 해 전 세계 단 20명의 천재만 받는다는 맥아더 상을 받게 됩니다.
분노합시다. 우리가 이렇게 살 존재가 아님을 증명해내야 합니다. 앤절라 더크워스는 그릿을 기르기 위해 “작은 일이라도 완료하는 습관”을 만들어보라고 말합니다. 거창할 필요는 조금도 없고, 오히려 지킬 수 있는 아주 작은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대신에 정한 계획은 ‘무조건’ 끝까지 완료해야만 합니다. 끝까지 해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이 지금 드는 힘보다는 훨씬 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난 여기까지야.’라고 말하지 마세요. 우리는 누구도 자신이 갈 수 있는 한계까지 가보지 못했습니다.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건 재능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중간에 포기했기 때문이에요.”
야고보는 이러한 분노로 그리스도를 닮아갔던 사도입니다. 우리가 왜 주님께서 주시는 잔을 마실 수 없을까요? 저는 특별히 ‘일곱 번의 주님의 기도’를 바치며 제 자신에 분노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도를 바치면 나의 죄 하나하나가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받고 있음을 알게 되고 그분께 계속 아픔만 드리는 나 자신에 대한 분노가 끓어오릅니다. 그리고 순교자의 지위에 오를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 자신과의 싸움을 멈추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저를 발전시켰고 그 길을 바로잡아주는 거울과도 같은 것은 『하.사.시.』입니다. 말씀은 이렇게 내 안에 분노를 불러일으켜야 하고 그것이 나를 분명 그리스도의 삶과 닮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미국 심리학자 에론슨은 대학생을 대상으로 유쾌한 실험을 했습니다. 연구진은 퀴즈왕을 뽑는 대회인 척 퀴즈쇼 장면을 녹음했습니다. 그리고 쇼 장면의 음성 파일을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누구를 퀴즈왕으로 선발할지 투표하게 했습니다. 음성 파일에는 네 명의 참가자가 등장하는데, 첫 번째 참가자는 문제를 대부분 맞췄고, 두 번째 참가자는 반도 맞추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 참가자는 첫 번째 참가자처럼 문제를 대부분 맞췄고, 네 번째 참가자는 두 번째 참가자와 같은 정답률을 보였습니다. 첫 번째와 세 번째, 그리고 두 번째와 네 번째 참가자가 똑같은 것 같지만, 여기서 다른 점 하나가 있었습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참가자에게는 퀴즈 도중 옷에 커피가 쏟아지는 돌발 상황이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에론슨은 대학생들에게 네 사람 중에서 가장 호감 가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물었습니다. 학생들은 예외 없이 모두 세 번째 참가자를 지목했습니다. 즉, 정답을 모두 맞혔지만, 커피를 옷에 쏟은 참가자입니다. 이를 통해, 인간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실수 효과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빈틈없는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자기에게 빈틈이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자기는 빈틈없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만족하는 나의 모습은 완벽한 자기 모습입니다.
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쓸데없는 힘을 쏟고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 겸손하라고 강조하신 것은 쓸데없는 힘이 아닌, 중요한 곳에 힘을 쏟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사랑에 온 힘을 쏟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야 우리가 영원히 머물러야 하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사도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하느님 나라에서 예수님의 양옆에 앉을 수 있게 해 달라는 청을 올립니다. 치맛바람을 일으킨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라고 물으시고, 그들은 자신 있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제자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도망치고 맙니다. 또 다른 제자들은 이런 청을 올렸다고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자기 삶에 있어서 흑역사를 다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를 복음에 등장시켜서 부끄럽고 부족한 자기의 모습을 세세 대대 알립니다. 그들의 영웅적인 모습만 남겨도 될 것을, 왜 이런 모습을 남겼을까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빈틈 많은 사람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지금입니다. 지금 얼마나 주님의 뜻을 충실하게 실천하고 있느냐입니다. 과거의 부족한 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사랑하는 모습이 중요합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가 사는 환경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내가 바뀔 때 인생도 바뀐다.
- 앤드류 매튜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높은 자리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삶을 지켜온 사람은 오히려 높은 자리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셔야 할 고난의 술잔을 기꺼이 마시며 주님을 따른 사람들입니다.
고난의 잔은 마음의 길을 내며 주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듭니다. 이렇듯 자신의 십자가를 기쁘게 껴안는 사람들이 한껏 성장하고 더 강해질 수 있는 것은 삶에 얽힌 약함과 한계를 고통과 고뇌를 기꺼이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더위와 추위와 장마를 이겨내는 나무들의 모습은 마치 예수님을 따른 사도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거짓의 노예로 살아온 우리들을 세상의 시선으로 살아온 우리들을 숭고한 영혼으로 바꾸어 줍니다.
숭고한 영혼이란 하느님을 사랑한 영혼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기에 섬기고 하느님을 사랑하기에 자기 목숨을 기꺼이 바치는 것입니다. 사람의 존재 가치를 지키고 살아내는 것이 높은 자리가 아니라 십자가를 지는 일이며 섬기는 것이 삶을 풀어내는 은총입니다.
십자가의 뜨거운 심장에서 복음은 시간이 지나도 살아있는 말씀이 됩니다. 살아있는 말씀을 따르는 살아있는 성장의 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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