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너희를 데려오셨으니, 주님의 가르침을 언제나 되뇌어라. 알렐루야.
하느님, 언제나 새로운 자녀들로 교회를 자라나게 하시니 하느님의 종들이 신앙으로 받은 성사를 삶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2024년 4월 1일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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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사도 2,14.22-33)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 오늘 복음
(마태 28,8-15)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 오늘 말씀 카드
(마태 28,10)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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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마태 28,8-15
오늘 복음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때에
8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
9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마주 오시면서 그 여자들에게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다가가 엎드려 그분의 발을 붙잡고 절하였다.
10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11
여자들이 돌아가는 동안에 경비병 몇 사람이 도성 안으로 가서, 일어난 일을 모두 수석 사제들에게 알렸다.
12
수석 사제들은 원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한 끝에 군사들에게 많은 돈을 주면서
13
말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하여라.
14
이 소식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더라도, 우리가 그를 설득하여 너희가 걱정할 필요가 없게 해 주겠다.”
15
경비병들은 돈을 받고 시킨 대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 말이 오늘날까지도 유다인들 사이에 퍼져 있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4월 1일
윤호진 토마스데아퀴노 신부
✚ 교황님 4월 기도지향 00:23
✚ 미사시작 00:38
✚ 강론시작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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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두려움 없는 기쁨
오늘 복음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무덤을 떠나는 여자들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이때 강조된 주제는 ‘두려움’과 ‘기쁨’인데, 이 주제는 이후에도 되풀이됩니다.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알고 제자들에게 급히 가던 여자들은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평안하냐?”라는 인사를 받게 됩니다.
이 인사를 그리스 말에서 직역하면 “기뻐하여라!”이며 명사 기쁨(‘카라’)의 동사형(‘카이로’)이 쓰였습니다. 이 동사는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님께 드린 인사말에도 쓰인 바 있습니다(“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이어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하십니다. 이 단어도 오늘 복음의 시작(8절)에서 쓰인 명사 두려움(‘포보스’)의 동사 형태가 쓰인 경우입니다.
곧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무덤을 떠난 여자들은, 이제 예수님께 “기뻐하여라.”(9절, 우리말 번역으로는 “평안하냐?”)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말씀을 듣게 된 것입니다.
이는 부활의 시간을 걷게 된 우리에게 두려움과 기쁨은 수없이 다가오는 감정이고, 그렇게 꾸준히 길을 가다 보면 어느 순간 예수님을 만나게 됨을 알려 줍니다.
그런데 복음의 후반부에는 예수님을 만나 “기뻐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인사 말씀을 들은 여자들과 달리 두려워하고 근심에 빠진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등장합니다. 무덤이 비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인간적 술수, 곧 담합하고 매수하는 것으로 부활을 감추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뻐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증인들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요? 독서에서 베드로는 오순절에 모인 대중 앞에서 과감하게 선포합니다.
“그분을, 여러분은 ……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
두려움 없는 기쁨은 감출 수도 묶어 둘 수도 없는 힘이며 빛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새로운 성소를 사는
오늘 복음에는 여인들과 남자들이 나오고, 주님의 부활을 알리려는 여인들과 그것을 감추려는 남자들이 나옵니다.
남자들은 왜 감추려고 합니까? 보통은 악행을 감추려 하는데 이들은 자기들이 한 짓이 악행이라고 생각하기에 감추는 것일까요? 제 생각에 이들은 여전히 자기들이 한 짓이 악행이라고 생각지 않았을 겁니다.
그들은 여전히 예수는 예언자도 메시아도 아니고, 사회적으로는 위험한 인물이고 자기들에게는 위협이 되는 자, 그래서 죽어 마땅한 자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러니 자기들이 예수를 죽인 것은 결코 악행이 아니라 정당한 행위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주님의 부활 사실을 숨기려고 한 것은 자기들의 오판을 숨기려고 한 것이고, 자기들의 권위와 권력이 손상되는 것이 두려워 숨기려 한 것일 겁니다.
어쨌거나 이들은 하느님께서 하신 것에는 관심이 없고, 하느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들의 권력이지 하느님의 능력이 아니고, 자기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지 하느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들의 권력이지 진실이 아니며 하느님의 사랑도 백성들의 구원도 아닙니다. 자기들은 언제나 옳고 옳지 않은 짓을 했어도 그것이 드러나거나 드러내서는 안 되고 옳지 않음이 드러나 자기들의 권력이 위협을 받아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 권력자들에게서도 똑같은 모습을 생생하게 보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진실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백성을 사랑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더더욱 무리입니다.
이렇게 자기의 권력만 중요하고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는 자들과 달리 오늘 여인들은 오로지 사랑의 존재들이고 사랑을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여인들은 주님께서 부활의 능력을 보이시기를 바라지도 않았고, 그래서 주님께서 부활하여 살아계신 것을 보고 싶어서 무덤에 간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사랑 때문에, 보고 싶어서 사랑하는 이의 무덤을 찾은 것뿐입니다. 이들은 제자들과도 다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능력을 보고 따랐고 권력을 보고 따랐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권력을 잡으려고 주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목격한 것은 주님의 능력도 권력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본 것은 권력자들 앞에서 주님의 무력함과 무기력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크나큰 좌절과 허탈감 속에 있었는데 이런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갈릴래아로 가라고 하십니다.
갈릴래아는 그들에게 어떤 곳입니까? 그들이 성소를 처음 받는 곳 아닙니까? 그러니 갈릴래아로 가라는 것은 다시 성소를 받으라는, 새로운 성소로 다시 출발하라는 새로운 성소일 겁니다.
세상의 권력이 아닌 하느님의 능력을 다시 체험하고, 아니, 주님의 능력보다도 주님의 사랑을 더 체험하고 오늘 사도행전에서 보듯이 주님의 사랑을 당당하게 전하는 용감한 증언자들이요 주님의 형제들이 되라는 성소일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을 배반한 제자들을 당신의 형제들이라고 하시며 여인들에게 가서 이렇게 전하라고 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우리도 죄지은 우리를 형제라고 하실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새로운 성소를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관심만 있으면 부활은 저절로 믿어진다. 그러나 관심이 없는 이유가…
신자들과 면담할 때 제가 가장 중점으로 삼는 것은 미사만 나오지 말고 레지오와 같은 단체에 들어가 친교 공동체를 형성하라는 것입니다. 미사만 나와서는 신앙의 발전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신앙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하고 그 결과가 공동체이며 그 소속감에서 신앙의 참 행복을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신자들은 이것을 매우 꺼립니다. 성당엔 나가야 하는지 알지만, 내가 숨기고 싶은 것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자꾸 물어보는 게 싫은 것입니다. 만약 자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엄마가 자신의 가정사를 모르는 본당에 이사 왔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그 본당에서 적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사만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자녀가 죽은 게 본인 탓이라고 부모는 느낄 수밖에 없는데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상처를 건들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본당에서 공동체를 만들어 하느님 사랑을 그 공동체 안에서 느끼는 삶이 참 부활의 삶이라고 한다면 우리 안에 있는 상처는 그 부활의 삶으로 가는 길을 막습니다. 만약 그 부활의 삶이 레지오 단체라고 한다면 상처 있는 사람은 그 레지오 단체에 대해 전혀 알고 싶지 않습니다. 이것이 부활을 체험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분명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분명 예수님께서 여자들에게 부활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모두 수석 사제들에게 알렸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부활을 믿지 못하는 이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돈을 좋아하는 마음이 그들의 발목을 잡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수석 사제들은 원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한 끝에 군사들에게 많은 돈을 주면서 말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하여라. 이 소식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더라도, 우리가 그를 설득하여 너희가 걱정할 필요가 없게 해 주겠다.”
경비병들은 돈을 받고 시킨 대로 하여 많은 유다인들이 그들의 말을 듣고는 부활을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있는 상처가 나의 탓이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탓이건, 아니건 모든 죄는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받습니다. 그런데도 그 상처 때문에 공동체와 하나 되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결국 ‘나의 영광’을 추구하고 ‘세상이 주는 영광’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상에 집착하면 결국 하늘로 오를 수 없습니다.
‘예수는 역사다’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신문기자로 그리스도인들의 헛된 신앙을 깨버리려고 성경과 역사를 연구하다가 결국 신앙을 가지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실화인데 그가 쓴 책은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로 볼 수 있는 것은 믿으려고 하지 않고 그냥 알려고만 해도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그는 신문사와 같은 입장에 설 수 없습니다. 그 신문사는 종교색채를 띠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전 경비병들에게처럼 부활의 증거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고 믿으려고만 하면 누구나 쉽게 믿을 수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부활은 이렇게 베드로와 요한이 빈 무덤을 보려고 달려가는 노력만 있으면 믿어질 수 있습니다. 저도 하.사.시.를 통해 예수님을 알려고 했던 것 덕분으로 부활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혼이나 세상에서의 성공에 대한 애착이 끊어지고 있지 않았다면 그 열 권의 책을 5년에 걸쳐 끝까지 읽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참 부활의 갈릴래아인 신학교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고 그러면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고 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처음 비행기를 탄 순간은 신학생 때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날 때였습니다. 몇 년 동안 돌아올 수도 없고, 말 한마디도 못 하는 나라로 갈 때 저는 정말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비행장에는 저를 배웅하러 많은 사람이 나왔었는데, 저는 그들과 지내는 것이 참 행복했습니다. 그들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이후로 참 많이도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리고 가장 기쁘게 비행기를 탔던 순간이 언제였을까요? 바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올 때였습니다. 이탈리아 쪽으로는 오줌도 누고 싶지 않을 정도로 정이 떨어졌습니다.
하늘로 오르는 것을 부활이라고 한다면, 그 부활은 내가 지금 발붙이고 있는 곳에 정이 떨어져야 합니다. 그냥 사는 게 힘들어서 무조건 떠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발붙이고 있는 곳과는 비교도 안 되는 영광이 기대되는 곳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누가 말려도 스스로 부활을 믿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영광만을 바라면 결코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오를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실 자기 영광만 찾는다면 그는 유익한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신학생들은 자기 나라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하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
방학 때 여러 신학생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일자리를 얻어 자기 집에 돈을 보내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결코 신학교로 돌아갈 수 없고 사제가 될 수도 없습니다. 이것 아니면 저것입니다. 내가 지상의 부활을 원한다면 천상의 부활은 믿을 수 없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하버드대 우등생 공부 비법이 있다고 합니다. 우등생들은 평소에 설렁설렁 노는 것 같은데 성적은 기가 막히게 나온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숙사 사감이었던 교수가 이들을 눈여겨본 것입니다. 그러면서 잘 드러나지 않는 공부 비법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것이었습니다.
‘예정보다 열흘 먼저 해치우기.’
읽어야 하는 책이 있으면 열흘 먼저 읽습니다. 제출해야 하는 에세이도 열흘 전에 다 씁니다. 발표할 자료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단순히 하버드대 우등생만 그러했을까요? 소위 성공했다는 말을 듣는 결정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 모두가 이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많은 이가 뒤로 미룰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벼락치기를 해야 자기의 뛰어난 능력이 나온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미리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는 주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우리는 늘 뒤로 미루고 있습니다.
‘나중에 여유가 되면, 나중에 힘이 생기면,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나중에….’
그런데 주님께서 이 말씀을 기억하시고, “나중에 구원해 줄게.”라고 하시면 어떨까요? 자기의 일은 늘 지금 당장 이루어져야 하고, 그 외의 것은 언젠가 이루어져도 된다는 이기심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공평하심을 믿는다면, ‘나중’이라는 말보다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찾아온 여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여자들은 실제로 제자들에게 곧바로 찾아갑니다. 뒤로 미루지 않고 곧바로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너무나 기뻤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너무나도 기쁜 일이 있으면 그냥 비밀로 간직하지 않습니다.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그만큼 여자들의 예수님께 대한 사랑이 컸기에 기쁨을 가지고 곧바로 찾아갑니다.
이 사랑을 아셨기에 여자들에게 가장 먼저 부활하셨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경비병들도 무덤에서 있었던 일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사람들이 아닌, 예수님을 제거하고자 했던 수석 사제들을 찾아갑니다. 경비병들에게 예수님 부활은 전혀 기쁘지 않고 오히려 두려움의 이유가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사랑을 전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만큼 주님의 뜻인 사랑을 전하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곧바로 행동합니다.
오늘의 명언
모든 것을 인내로 대하는 사람만이 모든 것에 도전한다.
- 바우베낙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첫 마음이 있습니다. 마음이 있기에 갈릴래아도 있는 것입니다. 가야할 길은 다름 아닌 우리가 살아내야 할 일상의 길입니다. 우리의 일상 안으로 들어간 거기에서 새로워진 것들을 하나둘씩 만납니다. 사랑이 없기에 일상을 살면서도 일상이 축복이며 일상이 선물인지를 몰랐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부활의 선물은 더 이상의 그 무엇도 아닌 가난한 마음의 일상(日常)입니다. 예수님을 향했던 첫 마음과 마음이 꺾였던 성장의 갈릴래아입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예수님이 아니십니다. 사랑을 먹고 사는 부활의 우리들입니다. 어딜 가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계시기에 예수님이 바로 우리가 보고 만나야 할 갈릴래아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다시 만나는 부활입니다. 부활의 기쁜소식 첫 페이지는 다름 아닌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만나는 기쁨입니다. 이제는 다른 곳에서 찾지 않습니다. 사랑을 먹고 첫 마음이 자라듯 우리의 마음은 예수님의 부활로 일상이 피워내는 꽃들을 새롭게 만납니다. 날마다 일상의 첫 마음 일상의 뜨거운 부활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지면 갈릴래아도 새로워집니다. 부활은 그래서 새로운 삶의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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